나사렛대학교를 재활복지 특성화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뒤 나는 장애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장애인 인식 개선이 절실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1998년 장애인의 날을 맞아 대대적인 ‘장애체험 행사’를 계획했다.
그것은 학교에서 출발, 천안역을 거쳐 천안버스터미널까지 무려 5㎞를 휠체어장애체험, 안대를 하고 걷는 시각장애체험, 무언의 청각장애체험을 하는 것이었다. 나사렛대학이 설립 후 최초로 마련한 장애체험에는 미국인 선교사 백위열 총장과 한국 최대 장애인 조직인 지체장애인협회 장기철 회장이 선두에 섰다. 장애인 수십명이 자연스럽게 행사에 동참했고 인간재활학과 학생들이 앞장섰다. 또 재학생 300여명도 동참했다.
한마디로 성과가 아주 좋았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흘렸다. 보행 중 다리를 다치고 부딪쳐 상처가 났다고 했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장애체험의 수고를 한 만큼 더 크고 더 깊게 장애를 이해했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나도 미국에서 무려 3일 꼬박 안대를 하고 시각장애인을 체험했던 적이 있다. 그에 비하면 두세 시간 체험은 쉬운 것이었지만 결코 작지 않은 5㎞를 장애체험한 것을 지금도 기억하며 이야기하곤 한다. 행사 후 서로 어려움을 토로하는 모습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하나 되는 통합사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행사는 사회의 관심을 끌었고 나사렛대 설립 이후 가장 많은 언론 보도가 나왔다.
장기철 회장은 행사 후 새로운 것을 요청했다.
“김 교수님, 최근 장애인 정책 패러다임이 장애 당사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데 정작 장애인들은 학력이 낮습니다. 장애 당사자가 국회의원이 되거나 지방의회에 많이 진출하려면 ‘의회 정치대학’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만들어주세요.”
그의 요구는 현실화됐다. 난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의회 정치대학 교학처장을 맡아 장애인의 지방의회 의원 진출의 교두보를 놓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 이는 내 생에 큰 보람 중 하나다. 이곳에서 난 법학석사 학위를 갖고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던 우주형 교수를 만났는데 그는 지금 나사렛대학 인간재활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지체장애인협회에서 통계를 내보니 2014년까지 지방의회나 자치단체장 등으로 진출한 장애인이 87명이라고 했다. 장애인들이 사회 곳곳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99년 11월 중순, 한 통의 전화가 교수연구실로 걸려왔다.
“릴레이로 이어지는 MBC ‘칭찬합시다’입니다. 한 인사가 교수님을 칭찬해서요.”
나를 추천한 이는 양평 은혜의집 최재학 원장이었다. 최 원장은 박인숙 사모님과 오갈 데 없는 장애인 30여명을 지극한 정성과 사랑으로 돌보고 계셨다. 그러나 90년 초, 은혜의집을 설립할 때 주변에서 장애시설이 들어온다는 이유만으로 전입신고조차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이때 내가 문제를 도와주고 상담해 주었는데 고마웠던지 ‘칭찬합시다’의 주인공으로 나를 추천한 것이다.
당시 인기였던 이 방송의 힘은 컸다. 방송 후 난 하루에 10건 이상의 상담 요청을 받았다. 사명으로 여기고 한 건 한 건 최선을 다했다. 한 인사가 “김 교수님, 일복이 터졌네요, 얼마나 힘드세요?”라고 했지만 나로선 가진 지식을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MBC ‘칭찬합니다’ 출연 이후 장애인식 개선 프로그램인 ‘손에 손잡고’가 신설됐고 나는 더블 MC로 기용됐다. 이 프로그램은 장애인 선수 한 명과 연예인 한 명이 휠체어를 타고 장애를 체험하는 것으로 시청자들에게 장애인 이동권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워주었다. 동시에 잔잔한 감동도 주었고 무엇보다 장애인 인식 개선에 큰 몫을 해 주었다.
정리=김무정 기자 kmj@kmib.co.kr
[역경의 열매] 김종인 <11> 비장애인들 5㎞ 휠체어·안대 장애체험 행사
입력 2015-11-29 18:13 수정 2015-11-29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