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 이튿날인 25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자국 전투기가 추락한 곳에서 멀지 않은 터키·시리아 국경지대에서 작전을 재개해 친(親)터키 세력에 대한 대규모 공습에 나섰다. 러시아는 또 터키산 식품 수입 제한 조치 등을 통해 경제적 압박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공군은 터키와 국경이 맞닿은 시리아 동북부 라타키아주 일대에서 투르크멘족 반군을 공습했다. 러시아는 특히 터키에서 시리아 내 반군 쪽으로 향하는 인도주의 물자 수송 트럭이 머무는 터미널까지 파괴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들은 “이번 공습은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단행한 공습 가운데 터키 국경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타깃으로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앞으로도 이 일대에서의 공습을 강화할 방침을 밝혔다. 러시아 크렘린궁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반군이 터키 국경에 가깝게 포진하고 있기 때문에 국경 근처에서 공습할 수밖에 없다”며 “우린 앞으로도 거기에 공습을 퍼부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전날 S-400 지대공 미사일 포대를 라타키아주 내 히메이밈 러시아 공군기지에 배치키로 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기자들에게 “미사일 포대 배치를 비롯한 일련의 (라타키아항 순양함 배치 등) 조치들이 우리 전투기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로이터통신은 “푸틴의 말은 터키에 ‘두 번 다시 러시아 전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S-400은 최고 속도 마하 12, 최고 비행고도 3만m에 최대 사거리 400㎞로 전 세계 전투기들을 거의 대부분 타격할 수 있다.
러시아와 터키는 수사적으로는 ‘확전 자제’를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보복 조치는 벌써부터 가시화되고 있다. 터키는 러시아의 다섯 번째 교역 상대국으로, 지난해 양국 교역량은 310억 달러(약 35조원)였다. 당장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성명을 통해 “터키와의 주요한 합작 사업들이 취소되거나 러시아 시장에서 터키 기업들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미 CNN방송은 “러시아가 터키산 식품 수입 제한 조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터키산 농산품은 러시아 전체 농산품 수입의 20%를 차지한다.
영공 침범에 대한 진실게임 공방도 계속됐다. 전투기에서 탈출해 생존한 러시아 조종사는 “터키로부터 어떤 경고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터키는 자국 조종사가 영어로 ‘기수를 돌리라’고 요구한 녹음파일 기록을 공개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26일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터키와의 확전 자제를 당부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다음 달 15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릴 예정이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했다고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가 보도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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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26 21:54 수정 2015-11-26 23: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