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브랜드 슬로건 잔혹사] 단체장 바뀌면 바뀐다? ‘일회용 슬로건’

입력 2015-11-28 05:00

지난달 발표된 서울시의 새 브랜드 슬로건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I.SEOUL.U(아이 서울 유)’라는 브랜드를 놓고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문법에도 맞지 않는다”는 혹평이 쏟아졌다. 당황한 서울시는 한 달도 안돼 ‘I·SEOUL·U’로 디자인을 일부 바꿨다.

그러나 “점(.) 위치를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여론의 뭇매는 더 심해졌다. 이번 논란은 40년 가까이 사랑받고 있는 미국 뉴욕시의 브랜드 ‘I♥NY(아이 러브 뉴욕)’ 등과 비교되면서 파장이 더욱 커졌다.

서울뿐 아니라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은 2000년대 접어들면서 브랜드 슬로건에 부쩍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민에게 사랑받는 장수 브랜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국 지자체의 브랜드 슬로건은 단체장이 바뀌면 교체할 수 있는 ‘치적용’으로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도시의 얼굴인 브랜드 슬로건이 도시 이미지를 더욱 헷갈리게 하고 예산 낭비만 초래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남도는 지난 7월 1일 새 브랜드 슬로건 ‘브라보 경남(Bravo Gyeongnam)’ 선포식을 가졌다. 경남도는 김태호 지사 재임 시절인 2006년부터 ‘필 경남(Feel Gyeongnam)’을 사용해 왔는데 홍준표 지사 2기 도정 1주년을 맞아 브랜드를 갈아 치운 것이다.

전남도는 민선 5기 박준영 지사 때 만든 ‘녹색의 땅 전남’을 민선 6기 이낙연 지사 때 ‘생명의 땅 전남’으로 바꿔 달았다. 전남도는 “전남이 생명의 원천이자 생명을 치유하는 곳”이란 의미라고 설명했으나, 충북도의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을 모방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제주도는 2009년부터 사용해 온 ‘온리 제주(Only Jeju)’를 2013년 바꾸려다 중단했다. ‘Only Jeju’는 김태환 지사 때 도입됐으나, 후임인 우근민 지사 때 용역을 통해 ‘파인드 유어 제주(Find your Jeju)’가 대체 브랜드로 발표됐다. 하지만 이 브랜드는 원희룡 지사 취임 이후 날개도 펴지 못한 채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로 인해 7억원 가까운 혈세만 낭비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대구시는 2004년 제정된 ‘컬러풀 대구(Colorful Daegu)’를 대체할 통합브랜드 개발을 추진 중이다. 인천시도 2006년부터 사용해 오던 ‘플라이 인천(Fly Incheon)’을 교체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이처럼 상당수 브랜드 슬로건이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안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단체장들이 자신의 치적을 하나 더 쌓기 위해 도시의 얼굴인 브랜드 슬로건을 입맛대로 바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서울시의 ‘I.SEOUL.U’ 개발 작업에는 9억원이 들어갔다. 그런데도 20여일 만에 ‘I·SEOUL·U’로 수정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브랜드 슬로건 개발비용이 9억원이지만 간판과 책자 교체, 홍보작업 등을 포함하면 실제 예산은 몇 배에 이를 전망이다.

상지대 이희복(언론광고학부) 교수는 “자치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마케팅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공모전에서 1등 했다고 해서, 아니면 단체장의 뜻이라는 이유로 즉흥적으로 바꾸는 것은 문제”라며 “브랜드 슬로건은 수십년을 쓰겠다는 각오로 만들고 한번 만들었으면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 풍토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