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슬로건은 각 도시의 정체성을 높이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창출하는 주요 마케팅 전략의 산물이다. 빠른 세계화 흐름 속에서 국가 간 경쟁뿐 아니라 도시 간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세계 주요 도시들이 브랜드 슬로건을 앞 다퉈 내세우고 있다. 우리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엇을 강조하는지 모호한 브랜드 슬로건이 수두룩한 데다 ‘짜깁기’ ‘베끼기’ 의혹을 받는 것도 적지 않다. 따라서 단순히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용이 아니라 20년 이상 도시 경쟁력을 상징하는 브랜드를 고민해야 하고, 한번 만들면 쉽게 바꾸지 못하도록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잡한 영어 수두룩, 억지로 의미 부여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 ‘유어 파트너 광주(Your Partner Gwangju)’ ‘이츠 대전(It’s Daejeon)’ ‘울산 포 유(Ulsan for You)’ ‘프라이드 경북(Pride Gyeongbuk)’ ‘라이블리 강원(Lively Gangwon)’ ‘에코피아 가평(Ecopia Gapyong)’ ‘지앤지 파주(G&G Paju)’, ‘어메이징 익산(Amazing Iksan)….
2015년 현재 대한민국 자치단체의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대부분 영어다. 좋은 뜻의 단어를 가져왔지만 지역민들이 의미를 곧바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대전시는 2004년부터 ‘It’s Daejeon’을 사용하고 있다. 대전시는 It’s가 Interesting(재미)과 Tradition(전통) & Culture(문화), Science(과학) & Technology(기술)를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이미지를 전달하려는지 분명하지 않고, 대전의 정체성 표현도 모호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천시의 브랜드 슬로건은 ‘플라이 인천(Fly Inchon)’이다. 비약적 도약을 거듭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과 함께 인천시도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그러나 날아다니는 ‘파리’와 영어발음이 같다는 지적과 함께 디자인도 세련되지 못하다는 혹평이 이어져 브랜드를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울산의 ‘울산 포 유(Ulsan for You)’나 제주의 ‘온리 제주(Only Jeju)’는 무엇을 나타내고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일부에서 알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반면 한글로 만들어져 정겨움을 주는 사례도 있다.
2012년 출범한 세종시는 ‘세상을 이롭게’를 내세우고 있다. ‘세종대왕’이라는 의미와 종합청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브랜드로 호응을 얻고 있다.
충북과 전북은 민선 5기 때부터 각각 ‘생명과 태양의 땅’ ‘천년의 비상’을 사용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초단체에서는 ‘사랑海요 영덕’(경북) ‘사랑해요 보물섬 남해군’(경남) ‘아리아리 정선’(강원) ‘건강의 섬 완도’(전남) 등이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경북 울릉군이 새로 만든 ‘우리도(島) 울릉도’도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도시 슬로건 모방하는 사례도
일부 지자체는 다른 도시에서 이미 사용 중인 단어를 모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물론 다른 도시에서 사용 중인 사실을 사전에 몰랐거나, 우연히 겹쳤다고 볼 수도 있지만 브랜드 설정과정이 치밀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불가피해 보인다.
경남도는 기존 ‘필 경남(Feel Gyeongnam)’이 인지도가 낮고 공감대 형성이 어렵다는 평가에 따라 도민 공모를 통해 지난 7월 1일 ‘브라보 경남(Bravo Gyeongnam)’으로 교체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선포식에서 “340만 도민의 꿈과 경남 미래 50년의 희망을 응원하는 당당한 도민의 목소리를 담았다”며 “매일매일 브라보 경남이 울려 퍼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브라보(Bravo)’는 이미 경기도 안산시가 2008년부터 사용해 오고 있는 브랜드다.
경북 구미시는 2007년 Young(젊음), Electronic(전자), Satisfaction(만족)의 첫 머리글자를 따서 ‘Yes Gumi’를 만들었다. 2013년 한국브랜드경영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소비자신뢰 대표브랜드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으나, 일본 도쿄의 ‘Yes! Tokyo’를 베끼지 않았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다. 경기 의왕시의 ‘예스 의왕(Yes! Uiwang)’은 느낌표(!)까지 그대로 붙였다.
이와 관련해 웃지 못할 촌극도 있다.
광주시는 2005년부터 ‘Your Partner Gwangju’를 사용해 오고 있다. 활용도는 미미하지만 11년째 고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시청 공무원 등이 광주에서 열린 2015 하계유니버시아드 기간에 ‘I봭광주’라는 글씨가 새긴 티셔츠를 단체로 입고 다녔다. 시민들은 “뉴욕의 ‘I봭NY’를 모방한 것 아니냐”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를 표방하는 광주의 자존심을 구겼다”며 손가락질했다.
서울시의 경우 ‘I·SEOUL·U’ 확정으로 ‘하이 서울(Hi Seoul)’은 1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Hi Seoul’은 2002년 이명박 시장 때 만들어졌다.
서울시, ‘Hi Seoul 되살려라’ 목소리에 곤혹
‘I·SEOUL·U’ 교체와 관련, 서울시는 수그러들지 않는 비판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서울시는 “새 브랜드 선정 이후 많은 시민들이 다양한 형태로 활용하고 있으며 세계 여러 도시에서도 확장 가능성이 높은 서울의 새 브랜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시민브랜드(Citizen brand)로서 시민들의 공감을 얻고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며,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시민들 사이에선 ‘Hi Seoul’이 훨씬 친근하고 뜻도 명확하다는 목소리가 적잖이 나온다. 서울시가 버린 ‘Hi’는 조만간 세계 어느 도시에서 주어다 쓸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걸진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은 오래 가도록 해야 한다. 갑자기 바꾸는 것은 혼란만 초래할 수 있다”며 “도시의 특징과 미래를 담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김용권 기자, 전국종합 ygkim@kmib.co.kr
[도시브랜드 슬로건 잔혹사] 전임자 치적 지우고 슬쩍 베끼고… 부끄러운 브랜드
입력 2015-11-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