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지난 23일 개최한 제64회 총회는 극적인 반전으로 끝났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주도로 마련해 각 교단 총무와 총회장들의 합의까지 거친 헌장개정안이 투표에서 부결된 것이다. NCCK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원로 목회자는 26일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행태를 보인다”며 “언제까지 자리 놓고 싸우는 딱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가”라고 한탄했다. 1994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권호경 당시 NCCK 총무는 임기 3년을 남긴 상태에서 기독교방송(CBS) 사장에 선임됐다. 예장통합이 ‘교단 안배 원칙을 무시하고 일부 교단이 교회연합기관 운영을 좌지우지한다’며 반발하면서 NCCK는 상당 기간 내홍을 겪었다.
이후에도 NCCK 총무 선출을 둘러싼 교단 간 충돌과 대립은 이어졌다. 이번 헌장개정안 역시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인 김영주 총무가 임기 만료 전 정년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연임한 것을 예장통합이 문제 삼은 게 발단이 됐다. 결국 이번 사건도 현재 NCCK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일부 세력과 이에 맞서는 예장통합 간 갈등과 대결의 연장선상에 있는 셈이다.
이번 개정안이 부결되는 과정은 NCCK가 집단적 협의체로서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유시경 대한성공회 교무원장은 “결국 NCCK 회원 교단들이 에큐메니컬 지도력을 만들어내는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것이 숙제”라며 “이번 기회에 공청회도 진행하고 여론을 수렴해서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연합기관 관계자는 “NCCK가 교단의 입김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고 연합기관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교단의 요구를 조화롭게 수용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NCCK 내에는 이 문제에 대해 상반되는 기류가 존재한다. 일부 회원 교단장과 총무들은 역할과 권한이 제한돼있어 교단 차원의 참여를 끌어내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한 실행위원은 “가톨릭과의 신앙과 직제 일치 운동, 민감한 대북 관련 성명서 등에 대해 교단의 입장을 묻거나 제대로 논의한 적이 없다”며 “총무 중심 운영도 좋지만 협의체라는 본질을 망각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예장통합 등 일부 교단이 적극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외부의 보수 집단처럼 NCCK의 활동을 극좌로 몰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회원교단들이 재정을 무기로 압박하는 것 역시 에큐메니컬과는 거리가 멀다고 이들은 지적한다. 그 배경에는 NCCK는 개 교회나 다른 연합기관은 하지 못하는, 이 시대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서서 예언자적 소리를 내는 마지막 등불 같은 존재가 돼야 한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 실행위원을 지낸 이삼열 기독교사회발전협회 이사장은 “건전한 합의구조를 만들어 의견을 조율하고 절충안을 찾아낼 수 있는 철학과 신념, 신앙을 가진 리더십을 못 내놓고 있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좌우의 이념적 대결구도를 넘어 평화와 정의라는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사회를 아우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박종화 경동교회 목사도 “연합기구는 결국 도구일 뿐”이라며 “기독교적 세계관의 새 틀을 확립해 교회와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게 우선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NCCK 변해야 한국교회 에큐메니컬 운동 살아난다] <하> 에큐메니컬 지도력 어떻게 세울까
입력 2015-11-26 19:59 수정 2015-11-26 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