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소리는 가진 사람들끼리만 주고받을 수 있는 화폐 같아요. 그 점이 안타까워요.”
한국계 미국인인 크리스틴 선 김(35·사진)씨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젊은 예술가다. 하지만 그녀의 두 귀는 들리지 않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런던 캐롤 플레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앞둔 청각예술가 김씨를 25일(현지시간)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녀지만 ‘소리’를 가장 잘 활용하는 예술가 중 한 명”이라고 소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의 한인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김씨는 선천적으로 두 귀가 모두 들리지 않았다. 2008년까지 화가로 활동하던 김씨는 예술계 유망주들을 후원하는 독일 베를린 타트 레지던시에 발탁돼 베를린에 갔다가 한 박물관에서 충격을 받았다. 소리와 관련된 예술 작품으로만 가득 채워진 이 박물관에서 김씨는 아무것도 감상할 수 없었다. 김씨가 청각예술 분야에 뛰어들게 된 계기였다.
당차게 낯선 분야에 도전한 그녀에게 귀로 들어본 적 없는 ‘소리’를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이 분야에 전부터 종사하던 동료 예술가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청각장애를 지닌 그녀가 ‘소리’를 소재로 예술적 영감을 제시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표정, 음악가의 연주 모습 등에서 ‘소리’를 읽어냈고, 그것을 예술로 표현해냈다. 때로는 회화로, 때로는 전자적 장치로 세상의 소리들을 표현해냈다. 일련의 독특한 작품들을 통해 김씨는 2013년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또 그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지난해 8월에는 세계적 명사들이 출연하는 테드(TED) 강단에 서기도 했다. 이 영상은 약 52만여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김씨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소리란 들리는 게 전부가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청각 예술가’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틴 선 김 “소리는 가진 사람들만의 화폐 같아요”
입력 2015-11-26 2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