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명문 컬럼비아대 합격한 탈북민 이성민씨 “유엔 사무총장 꿈 이뤄 한반도 통일 기여할 것”

입력 2015-11-26 19:04
탈북민 이성민씨가 25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유엔과 같은 국제무대에서 북한 주민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북한의 민주화 건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전호광 인턴기자

탈북민 이성민(28)씨는 지난 6월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과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유엔 사무총장이 되어 한반도 통일에 기여하고 북한주민의 인권을 위해 일하겠다는 자신의 꿈에 한발짝 다가선 순간이었다. 그러나 1년 학비인 8000여만원이 없어 한 학기 등록을 미뤘다. 두 달 전 인터넷 모금사이트에 이러한 사정을 올렸다.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 짧은 시간에 극적으로 학비의 절반 정도가 채워진 것. 그러나 여전히 학비를 대기엔 부족한 상황이다. 한 번 더 미루면 합격 취소가 될 수도 있다. 12월 말까진 무슨 일이 있어도 등록해야 한다.

25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에서 만난 이씨는 “출국일이 다음달 16일로 잡혔는데 비행기표도 극적으로 구했다”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가 열리길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 캐나다 일본 등에서 열린 한반도 관련 포럼에서 탈북민 연사로 초청돼 북한 상황과 지역주민 인권 등에 대해 증언했다”며 “10여 차례 이런 모임에 참석해보니 외국인들이 한반도 정세에 대해 주도적으로 논의하는 것을 봤다. 국제정세와 정치를 배워 탈북민 리더로서 ‘피스 메이커’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씨는 “탈북과 한국생활 등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은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덕분에 가능했다”고 고백했다. 양강도 출신인 그는 가난 때문에 12세 때부터 중국을 넘나들며 일했다. 그러다 북한 군인에게 발각돼 감옥에서 고문을 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누나는 돈 벌러 나가겠다고 중국에 간 뒤 북한에 10년 동안 들어오지 못했다. 그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북한에서 더 이상 미래를 볼 수 없었다”며 “2009년 12월 홀어머니와 목숨 걸고 압록강을 넘었다”고 밝혔다.

탈북 후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 검문소에서 공안들에 잡혀 아찔한 순간이 많았지만 기적적으로 모면했다. 중국을 거쳐 라오스에서도 현지 경찰에 잡혔다. 하지만 북한 대사관이 아닌 한국 대사관으로 이송되면서 2010년 2월 가족들과 한국 땅을 밟았다.

이씨는 지난 5년 동안 지인들의 중보기도로 한국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엔 여의도순복음교회에 등록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처음 한국에선 정체성 때문에 가장 힘들었습니다. 북한정권이 싫어 북한을 떠났는데 한국에서 저는 여전히 ‘북한인’이었습니다. 한국인도 북한인도 아닌 것 같아 괴로웠죠. 신앙을 가진 뒤론 ‘한반도인’이 되어 통일의 교두보 역할을 해야겠다는 비전을 갖게 됐습니다.” (기업은행 011-074316-01-014 이성민)

김아영 기자 cello0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