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가을장마

입력 2015-11-26 19:08

가을 끝자락에 하루걸러 비가 흩뿌린다. 강원도엔 눈도 내렸다. 가을비는 들이퍼붓는 여름비와 달리 추적추적 내리는 경우가 많다. 시인 공석진은 “언제나/ 늘 그렇듯// 소박맞은/ 여편네처럼// 잔뜩 풀이 죽은/ 모습으로 온다”고 했다.(시 ‘가을비’)

‘가을비는 장인의 나룻 밑에서도 긋는다’는 속담이 있다. 가을비는 아주 잠깐 내리다 이내 그친다고 해서 생겨난 말이다. 우리나라 기후 통계를 보더라도 11월부터 강수량이 줄어든다. 평년 11∼2월 강수량은 70∼80㎜ 정도다. 옛 어른들 말씀은 하나도 틀린 게 없다. 그러나 올해는 틀렸다. 이달 들어서만 전국에 100㎜를 훌쩍 넘는 비가 내렸다. 지난 1일부터 23일까지 전국에 내린 강수량은 111㎜로, 예년(35㎜)의 세 배 수준이다. 1973년 이후 11월 강수량으로는 최고다. 강수일도 가장 많다. 가을장마다.

예년의 경우 기압골이 통과하더라도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는데 올가을에 유독 비구름을 머금은 기압골이 한반도를 자주 지나면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한다. 예년과는 다른 기압 패턴이라는 설명이다. 기상청은 그 원인이 엘니뇨 현상에 있다고 보고 있다. 엘니뇨가 발달하면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 따뜻해지면서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한다. 이 같은 기압 패턴이 12월에도 이어질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다.

가을장마로 가뭄이 심했던 지역은 한시름 놓게 됐다. 국토교통부는 26일 “보령댐의 경우 저수량이 220만t 늘었고, 저수량 부족으로 ‘위기’ 단계에 있던 전국 9개 다목적댐 저수량은 3억600만t 증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가을장마가 마냥 고마운 것만은 아니다. 계속된 가을비 탓에 일조량 부족으로 과일 농사는 엉망이 됐고, 수확시기와 파종시기를 놓친 농작물도 적지 않다.

마침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가 오는 30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다. 각국이 자국 이익만 고집하면 푸른 별 지구가 붉은 별이 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