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최범선] 죽은 밀알이 주는 지혜

입력 2015-11-26 19:02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역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지켜보며 많은 생각을 한다. 그분에게는 유난히 최초, 최연소라는 호칭이 많이 붙었다. 마지막 가는 길도 최초의 국가장이다.

김 전 대통령의 삶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으니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반인이라면 겪지 않았을 아픔과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의 공과는 앞으로 역사가 두고두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특히 민주화를 위해 고초를 겪은 부분,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업적,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고 그 죗값을 치르게 한 일, 공직자 재산공개, 하나회 해체 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땅에 떨어져 썩는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하는 결단이 있었기 때문일 듯하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모두가 그 죽음이라는 문을 통과해야만 주어진 한 인생을 완성할 수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것보다 때론 더 중요하다. 즉 ‘죽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옳게 죽고자 결단하면 옳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든 자신만이 살려고 발버둥친다면 추한 열매만 남기게 될 것이다.

요한복음 12장 24∼25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죽는 지혜’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다. 농부가 밭에 밀알을 뿌리면 그 밀알은 땅속에서 썩는다. 놀라운 것은 밀알이 썩고 죽는 과정을 통해 상상하지 못한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점이다. 땅에 떨어진 밀알은 죽지 않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부분의 이치가 이와 같다.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는 구성원 중 누군가가 썩어 죽는 것을 통해 건강해지고 풍성해진다. 그러나 어떤 공동체이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이가 없다면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삶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내던진 이들의 ‘죽는 지혜’ 덕분이다. 우리 역시 후손에게 더 건강하고 풍성한 나라를 물려주려면 이러한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임기 말에 터진 불미스러운 일들은 아마도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자녀들, 가신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풍미한 한 인물이 또다시 우리 곁을 떠났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염려하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어야 역사 앞에, 그리고 남은 이들에게 더 좋은 열매를 남길 것인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든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 한 알의 밀알이 되길 자처해 ‘죽는 지혜’를 실천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행복하고 풍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기를 소원한다.

최범선 목사 (용두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