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상식’에 이의제기를 하는 셈이 된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박유하 세종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는 지난 2013년 8월 ‘제국의 위안부’를 출간하며 서문에 두렵다고 썼다. 그런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이 책은 지금 법정에 서 있다.
지난해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 11명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이 책의 저자와 출판사 대표를 고소했고, 출판·광고 등을 금지하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올 2월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고, 지난 19일 검찰은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해 저자를 불구속 기소했다. 국내 언론은 박 교수 기소 소식을 간단하게 보도하고 말았다. 그러나 일본의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은 기소 처분을 비판하는 사설까지 내보냈다. 26일 도쿄에서는 일본 지식인 수십 명이 기소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의 책은 한국에서 고소를 당했지만 일본에서는 굵직한 학술상을 연거푸 받았다. 지난달 와세다대학이 주관하는 ‘이시바시 단잔 기념 저널리즘 대상’을 수상했고, 그보다 앞서 마이니치신문이 제정한 ‘아시아 태평양상’ 특별상을 받았다.
박 교수와 그의 책에 대한 한·일 두 나라의 반응은 극명하게 다르다. 이를 책과 저자의 친일 성향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건 맞지 않는다. 지금 그를 옹호하는 일본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우익이 아니다. 그동안 일본 내에서 위안부 문제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해온 그룹이고, 우리가 ‘친한파’ 또는 ‘양심적 일본인’이라고 불러온 사람들이다.
일본 친한파 지식인들이 지지하는 책을 한국이 기소한다는 것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서 가장 우호적인 그룹이 공감하는 내용조차 한국에서는 배척된다는 말이 된다. 이 아득한 차이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두 나라의 인식차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쉽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시민사회가 오래 공조해온 역사를 떠올린다면 그렇게만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기서 이 책이 오독되고 있을 가능성을 떠올려보게 된다.
-위안부가 된 것은 조선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국 일본’에서 조선인 여성들이 ‘더 가난한 일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인 위안부도 많았다. 그녀들은 가난한 일본 여성이었다.
-위안부에게는 조선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제국 일본’의 일원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일본 군인들과 ‘동지적 관계’에 있기도 했다.
-위안부는 전쟁범죄라기보다 그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유곽, 즉 일본의 공창 문화에 그 뿌리가 있다. 위안부 문제는 크게 보아 ‘매춘’의 범주 안에 있다.
-위안부의 직접 가해자는 일본군이 아니라 이들을 모집하고 착취한 한국인 업주들이다. 일본군이 한국 땅에서 위안부를 직접 징집했다는 공식적 기록은 아직까지 없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이런 주장들이 나온다. 우리에게 익숙한 위안부 상과는 크게 다르다. 저자는 그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자료와 증언들을 토대로 위안부에 대한 낯선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위안부를 일본의 국가 범죄로 규정하는 기존 시각을 비판하면서 제국주의의 문제, 가난의 문제, 여성의 문제 등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이다.
이 책이 한국과 일본에서 오독되고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런 오독과 악용까지 저자가 책임져야 하는 건 아니리라. 박 교수와 그의 책에 대한 기소 사태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과 함께 한국에서 역사를 다르게 말할 자유가 있는가 묻고 있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차장 njkim@kmib.co.kr
[세상만사-김남중] ‘제국의 위안부’ 다시 읽기
입력 2015-11-26 1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