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전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지만, 그날은 천변을 따라 십 분쯤 걸어서 집으로 가고 있었다. 해가 진 직후라 어두운 푸른 하늘에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고,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는 길에는 기분 좋은 쓸쓸함이 감돌았다. 그러다가 한 소년을 보았다. 중학교 2학년쯤 되었을까? 작고 마른 몸에 좀 추워 보이는 후드티를 걸치고 있었다. 그 애가 눈에 띈 건 아마도 천변에 세워 놓은 자전거에 몸을 기댄 채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낭떠러지 앞에 홀로 서 있는 사람처럼 절박하게 외로워 보였다. 그렇게 어린 사람이.
나는 청소년 흡연이 그들의 발육 상태나 도덕성, 학교 성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혹은 학부모와 교사들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하려는 건 아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의견도 갖고 싶지 않다. 그저 바람 부는 길 한가운데서, 이제 곧 사라질 그림자처럼 위태롭게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고, 아프기도 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렇게 어린 사람이라서, 아직 세상을 다 살아버린 사람이 아니라서, 그에게 다가올 시간의 질감이 너무 거칠지는 않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왜소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연기를 길게 뿜어내던 소년의 얼굴이 며칠 동안 잊히지 않았다. 그 아이의 뇌리에서는 이미 흔적조차 없을 일일지도 모르지만.
잊었나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관객이 거의 없는 극장 안에서, 왜 그러는지 모르지만, 통로를 기어 다니고 있던 사람. 눈 오는 겨울밤, 시골 읍내의 문구점 앞에 놓인 구식 오락기계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초등학생의 뒷모습. 종로 한복판에 있는 어느 학원 앞에서 가방도 없이 책과 공책과 필통 같은 것들을 들고 어쩔 줄 모르며 서 있던 여학생. 모두 사소한 일, 부질없는 일,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다. 깜짝 놀랄 일도 아니고,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은 물론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도 기억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시간과 공간이 세상의 중심처럼 느껴진다. 그냥 그렇다.
부희령(소설가)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세상의 중심
입력 2015-11-26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