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초이북행야(猶至楚而北行也·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북쪽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중국 전국시대에 위(魏)나라 왕이 조(趙)나라를 치려고 전쟁을 준비할 때 신하 계양이 왕에게 한 말이다. 계양이 큰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북쪽으로 수레를 몰고 가면서 초나라로 간다고 했다. “그대는 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어찌 북쪽을 향해 가고 있습니까?”라고 말하니 그 사람은, “내 말은 아주 잘 달립니다”라고 대답한다. “말이 아무리 잘 달려도 이 길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계양은 말해주었다. “노자도 충분합니다.” 그 사람의 대답이었다. “아무리 노자가 많다고 해도 이 길은 초나라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말하자 그 사람은 다시, “나는 말을 잘 몰거든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말이 잘 달리면 달릴수록, 노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마부가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초나라로부터 더 빨리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계양은 왕이 군대를 일으켜 전쟁을 해 패권을 잡으려고 하는데 이것은 백성을 힘들게 해 흩어지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권력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을 빗대어 말했다. 덕으로써 백성을 평안하게 하면 많은 백성이 모이고 따르게 되니 저절로 패권을 이룰 것이었다.
방향은 능력이나 자원이나 기술 같은 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다. 요즈음 우리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늘 방향이 문제다.
온 세계가 국제적 테러와 민간 살상에 대해 공분하고 있다. 인류가 세계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그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방법은 언제나 보복, 소탕, 폭격, 전쟁 등과 같은 무력 대응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수십만명이 죽고 500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는데 테러 조직은 오히려 10배가 커졌고 시리아와 인접 국가로 넓게 퍼져나가고 있다. 그 많은 인력과 돈을 평화와 선린 사업에 투자했다면 세계는 훨씬 더 친밀해졌을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일어난 테러 이후 대처하는 방식은 안타깝게도 또다시 융단폭격이었다.
남한사람이나 북한사람이나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문제는 분단이요, 가장 큰 과제는 통일이라는 생각에는 다르지 않다. 그러나 정작 하는 일은 화해와 협력이 아니라 상대의 뺨을 치고 모욕과 위협을 하면서 무력을 키워 대립하는 방향으로만 치닫고 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역사는 중요하다고 말하고 역사 교육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시각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동일하다. 이제는 옛날과 달리 우리 사회가 성숙해 역사를 제멋대로 재단하거나 왜곡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일치한다. 그러면 역사 교과서의 방향은 당연히 자유화로 가야 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검인정이다 국정화다 하면서 머리가 터지도록 싸우고 있다.
폭력시위가 사회를 어지럽히고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은 모든 시민이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시위가 폭력으로 번지지 않도록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들여야 정석인데 들려오는 소리는 한결같이 강경 진압과 처벌 같은 소리들뿐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골격은 창조, 타락, 구속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창조하셨다. 인간이 피조세계에서 살아갈 때 두 가지 방향이 있다. 그것은 타락과 구속이다. 창조된 세계가 아무리 아름답고 선해도 타락을 향해 가는 때에는 슬픔과 고통과 절망이 따라온다. 선하고 정의로운 방향을 향해 나아가면 거기에 구원과 행복과 번영이 뒤따른다.
성경은 말한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방향이 중요하다.
□유 교수가 바이블시론 새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그는 침례신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현재 좋은이웃교회 협동목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유장춘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
[바이블시론-유장춘] 방향이 문제다
입력 2015-11-26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