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20명의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가 임금을 줄이고 근로시간을 늘리려면 통상 ‘사규’로 불리는 ‘취업규칙’을 수정해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야 한다.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이나 근로자 과반 이상의 동의를 얻는 과정도 거쳐야 한다. 서류를 꾸미고 노동부에 제출하는 과정에서 자문을 하는 것은 ‘공인노무사’의 몫이다.
그런데 노무사들이 이런 업무를 놓고 ‘행정사’와 갈등을 빚고 있다. 둘 다 행정서류 작성·제출을 대행·자문하는 직업인데, 그동안 노무사가 해온 일을 이제 행정사가 해도 된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정부의 ‘노동개혁’ 방침과 맞물리면서 일파만파 파장을 불렀다. 지난달 23일 법제처는 노무업무 관련 행정서류를 작성하는 서비스는 행정사도 할 수 있다고 길을 열어줬다.
길이 열리자 노무사와 행정사의 ‘일감 다툼’이 거세지고 있다. 노무사 측은 “전문성 떨어지는 행정사들이 정부의 노동개혁을 아무런 고민, 비판 없이 수용해 노동시장을 교란시킬 것”이라고 반발한다. 행정사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행하는 이들의 업무수행을 막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라고 반박한다.
갈등, 어떻게 커져왔나
노무사는 산업재해나 부당해고 등 노동사건의 전문성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1986년 도입됐다. 현재 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얻고 활동하는 사람은 3000명 정도다. 행정사는 직종이나 직책에 따라 5∼15년 공직생활을 하고 퇴직한 공무원이 조건 없이 자격을 얻거나 2013년부터 시작된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20만명가량이 자격을 가지고 있다.
노동 관련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서류를 누가 맡아야 하는지 엄밀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 일부 행정사가 노동 관련 서류 작성과 상담 등의 업무를 해오고 있었다.
갈등의 씨앗은 지난 2월 뿌려졌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과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각각 발의한 노무사의 업무 범위에 관한 ‘공인노무사법 개정안’이 공개되면서다. 개정안은 공통적으로 노무사가 아닌 자의 업무 제한을 규정하면서 제한 대상에 행정사를 포함했다. 아예 행정사가 노무사 업무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 때문에 행정사들의 반발이 일었다.
이 법안이 국회에 계류된 상태에서 행정자치부가 기름을 끼얹었다. 지난 6월 국민신문고에 ‘행정사가 노무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의가 접수됐다. 이와 함께 민원인은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요청했고, 그 결과에 따라 ‘가능하다’고 답했다. 2013년 ‘행정사가 노무사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했던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다.
법제처는 공인노무사법 제2조(직무의 범위)와 행정사법 제2조(업무)에 따라 공인노무사와 행정사가 수행하는 업무 중 중첩되는 부분에 한해 수행할 수 있다고 봤다. 법제처는 “노무사 업무 전체를 행정사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기본적인 행정사무 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해석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렇게 되자 고용부가 발끈했다. 고용부는 “법제처 해석을 존중한다. 하지만 행정사가 노무사를 대체할 수는 없고, 노무 업무와 관련해 대리·대행 업무를 행정사가 수행할 때는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밥그릇싸움? 노동개혁 갈등?
현재까지는 업무영역, 일감을 두고 벌이는 노무사와 행정사의 다툼으로 보인다. 한국공인노무사회는 “자격시험을 거치지 않은 행정사가 다수인 상황에서 포괄적인 조항에 대한 해석으로 노동시장을 교란시킬 것이 우려된다”고 꼬집는다. 이에 대해 대한행정사협회에서는 “기존에 해왔던 업무에 대한 확인일 뿐”이라며 “행정사 중에서도 노동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문제는 정부 주도의 노동개혁이 맞물리면서다. 일부 노무사들은 행자부의 입장 변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놓고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지적한다. 행정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무원 출신을 통해 정부 주도의 노동개혁에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노동시장에서 유리한 입장을 고수하기 위한 방책이라는 해석이다.
한 노무사는 “정부에서 추진 중인 노동개혁 중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하자는 것, 저성과자 해고를 쉽게 하자는 부분이 가장 핵심”이라며 “두 가지에 대해 부정적인 노무사들이 있는데 행정사들은 이런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고, 오랜 공직생활로 정부 방침에 무비판적”이라고 우려했다. 노무사회는 의혹에 대해 “이런 의견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로서는 납득할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기획] 노무사-행정사 밥그릇 싸움? 정부, 노동개혁 선제조치?
입력 2015-11-2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