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의 4·19 세대가 퇴장했다.
백낙청(77·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자신이 씨앗을 뿌려 50년을 키워온 창비를 떠나면서 “부끄러움보다 긍지를 느낄 일이 더 많은 동네”라고 자부했다. 표절 시비의 중심에 섰던 작가 신경숙씨 옹호 발언에 대한 세간의 비판에는 “기본을 고수하는 자세였다”면서 “이것이 창비의 다음 50년을 이어갈 후진에게 넘겨줄 자랑스러운 유산의 일부”라고 자부했다.
창비는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최대 연례행사인 문학상 통합 시상식을 가졌다. 대표 편집인인 백 명예교수는 인사말을 통해 퇴임의 소회를 밝혔다. 창비가 출간된 것은 1966년 1월이지만, 잡지 등록은 1965년 12월 10일이다. 창간 50주년을 맞아 퇴진의 뜻을 두어 해 전부터 결심했다는 그는 “창비를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계간 ‘창작과비평’은 창간편집인이 없이 해나가는 경험이 장기적으로 존속하기 위한 관건이다. 계간지 일에서는 완전히 손을 뗄 작정”이라고 말했다.
백 명예교수는 밝고 담담한 표정으로 “역경을 딛고 이만큼의 명성과 물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실력에 따르는 책임의 엄숙함을 아예 외면한 일은 결코 없었다”고 돌아봤다. 표절 논란과 관련해 “기본을 어렵사리 지켜내 왔음을 자부할 수 있고, 그런 자세가 비판자들의 표적이 되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한 작가의 과오에 대한 지나치게 일방적인 단죄에 합류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부패한 공범자로 비난받는 분위기에서, 어떤 정무적 판단보다 진실과 사실 관계를 존중코자 한 것이 창비의 입장이요 고집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간된 계간 창비 겨울호에서 염종선 편집이사도 ‘창비를 둘러싼 표절과 문학권력론 성찰-한 내부인의 시각’이라는 글을 실어 백 명예교수를 옹호했다. 지난 6월 표절 논란 이후 문학권력으로 지목돼 뭇매를 맞았던 창비에서 내부 임직원이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염 이사는 창비에 가해진 지배구조, 상업주의, 주례사비평 등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편집위원진의 특정 대학 편중도가 매우 낮은 점, 1999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된 점 등을 언급했다.
시상식에서는 백 교수와 함께 1985년 복간 이후 20년째 발행인을 맡아온 미술평론가 김윤수(79) 전 이화여대 교수, 10년 가까이 주간을 맡아온 백영서(62) 연세대 교수의 동반 퇴진 사실도 발표됐다. 창비를 이끌어온 1, 2세대의 전면 퇴진이라는 인적쇄신이 이뤄진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귀국한 28세 청년 백낙청이 군사독재 시절 시대를 읽는 창과 지성을 자처하며 염무웅(74·영남대 명예교수), 김윤수 등과 창간한 창비(당시 창작과비평)는 70∼80년대 한국 민주화와 궤를 같이 했다. 74년 세운 출판사 창비에서 낸 ‘신동엽 전집’ ‘8억인과의 대화’ 등 많은 책들이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시점에 백 편집인의 퇴진 발표가 이뤄진 점을 환기시키면서 “한국사회는 완전한 민주화는 아니지만 형식적 민주주의는 성취했다. 새로운 시대의 정확한 소명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창비의 새 편집인과 발행인, 주간은 내년 1월 초 발표된다.
한편 백무산 시인이 백석문학상을, 김지윤 시인은 창비신인시인상을 받는 등 6개 부문에 대한 시상이 있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기본 지킨 게 표절 비판자들의 표적돼”… 백낙청 ‘창비’ 대표 편집인 퇴임의 변
입력 2015-11-25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