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 긴장 고조] 서방·러시아 자중지란… IS만 웃는다

입력 2015-11-25 21:55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남부 소치에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과 회담 도중 고개를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터키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는 러-터키 간 관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FP연합뉴스
터키의 러시아 전투기 격추 사건 뒤 시리아 문제를 둘러싼 주요국들이 일제히 터키를 두둔하고 나서면서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위한 공조에 균열이 더욱 커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러시아가 그동안 시리아에서의 ‘개인플레이’를 접고 미국 프랑스 등과 함께 IS 격퇴에 힘을 합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런 상황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서방과 러시아의 자중지란으로 결국 IS만 쾌재를 부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 전투기 격추 직후인 24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방미 중인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의 행태를 맹비난했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가 IS가 아닌 시리아 온건 반군만 공습하고 있다”며 “러시아는 국제사회와 협조하지 않는 국외자(outlier)”라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65개국이 연합하고 있지만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이란과 러시아 2개국뿐”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전투기 격추 사건에 대해 “터키는 영공을 보호할 권리가 있다”며 러시아가 터키 영공을 침범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양국 정상은 IS 격퇴와 연계된 시리아 사태의 해법을 놓고도 아사드 정권이 퇴진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러시아를 압박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25일 TV 연설에서 “상황 악화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투기 격추를 둘러싼 당사국인 러시아와 터키의 공방은 ‘진실 게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터키는 유엔에 보낸 긴급 서한에서 “수호이(Su)-24 2대가 터키 영공에 접근해 5분간 10차례 경고했으나 두 전투기는 터키 영공 5800m 고도에서 국경으로부터 2㎞ 정도를 17초 동안 침범했다”고 밝혔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기는 터키 국경에서 1㎞ 떨어진 시리아 상공 6000m 지점에 있었으며 (피격 후) 터키 국경에서 4㎞ 떨어진 시리아 영토에 추락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터키를 침범하지도 않았고 당시 아무런 위협도 가하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서 분을 감추지 못했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터키가 최근 러시아 공군이 터키-IS 간 석유 밀거래 채널을 타격한 것에 불만을 품고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시켰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러시아 타스 통신이 전했다. 아울러 시리아 북부에서 러시아의 공습으로 투르크멘족 반군이 무너질 경우 터키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할 것을 우려했다는 분석도 있다.

상황이 악화되자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5일 예정된 터키 방문을 취소했다. 또 자국민에게 터키 방문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향후 러시아의 아사드 정권에 대한 지지 및 투르크멘족을 비롯한 시리아 반군에 대한 공격이 한층 격화될 수 있다. 서방의 IS 공격에 반군들이 제공하는 정보와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에서 반군이 약화되면 IS 격퇴전도 지지부진해질 수 있다. 게다가 미국에 이어 올랑드 대통령도 “프랑스는 시리아에 지상군을 파견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공습 위주의 공격만 이뤄져 사태가 장기화될 전망이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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