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밍 중인 핸드폰으로 일본인 관광 가이드의 한국어 설명이 새어나왔다.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인 장편 ‘댓글부대’(은행나무)가 서점가에 막 깔릴 때, 장강명(40) 작가 부부는 도쿄에 여행 중이었다. 올해 이 책을 비롯해 ‘한국이 싫어서’ 등 장편 3권을 토해내듯 출간했다.
그는 24일 전화인터뷰에서 “여름휴가를 못 갔다. 그래서 연말에 대신 가자고 아내와 약속했었는데, 덜컥 출간일과 겹쳤다”고 했다. 목소리가 밝고 개운했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12년차이던 2013년 9월 회사를 그만뒀다. 아내는 1년 3개월 시한을 줬다. “그 때까지 성과 없으면 재취업하라”는 통첩과 함께. 지난해 미친 듯이 6편을 썼고 그게 지난해 2권, 올해 3권 등 차례로 나오는 중이다.
장강명의 장편은 기자로서의 경험이 무기이자 힘이다. 다작도 그러하거니와, 대중의 성감대를 확실히 건드린다. 젊은층의 이민 문제를 다룬 ‘한국이 싫어서’는 요즘 온라인 대세어가 된 ‘헬조선’을 보여주는 현상에 다름 아니다. ‘댓글부대’ 역시 온라인 댓글에 목숨 거는 한국 사회의 심리 기저를 꿰뚫는다. 그걸 지적했더니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소설가와 확실히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기획기사 찾는 마음으로, 가장 트렌디한 주제가 뭔가 고민합니다. 이민이다 싶으면 호주 시민권 가진 사람 섭외해서, 취재하고, 살 붙이고 그랬던 거지요. 마감시간에 단련된 것도 도움이 되고요.”
문단에서 ‘야마(독자에게 가장 어필할 수 있는 주제를 뜻하는 기자세계 은어) 작가’로 통하는 그가 새로 택한 것은 온라인 댓글이다. 2012년의 국정원 댓글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가수 타블로의 학력 논란을 일으켰던 ‘타진요’ 사건도 그렇고, 사람들이 신문 뉴스나 객관적 정보보다 댓글을 더 믿고, 댓글이 여론을 바꾸는 걸 보고 많이 불편했습니다. 이걸 극단적으로 밀어붙여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썼습니다.”
소설에는 인터넷 여론 조작업체 팀-알렙의 멤버인 20대 청년 3명이 나온다. 이들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르게 해주겠다는 제안서를 들고 개인병원, 쇼핑몰을 찾아다니며 계약을 따낸다. 이들이 미스터리한 검은 조직인 ‘합포회’ 눈에 띈 건 W전자의 백혈병 사망 의혹을 소재로 만든 고발성 영화를 침몰시키는데 성공한 것이 계기가 됐다. 합포회 의뢰를 받아 진보사이트 ‘은종게시판’ ‘줌다카페’를 차례로 와해시키는데…. 하지만 언론에 이를 제보했던 멤버 중 한 명은 중국행 밀항선에 오르고 살해된다. 이어 나머지도 차례로 용도폐기 된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스토리가 짜임새 있고 설득력이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선일보, 신중현 등이 실명으로 거론되고 국정원, 삼성전자 등 연상이 가능한 이름도 적지 않다. 광우병 때 유모차 부대를 보냈다는 줌다카페에는 노골적인 성 상담 글이 올라오는 ‘섹스게시판’, 시댁을 수준 이하로 험담하는 ‘시월드 게시판’도 있다.
스스로 중도보수, 우파라고 자처하는 작가는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모두를 불편하게 하고 싶었다”면서 “기성세대 싸움에 젊은 세대들이 놀아나버리는 장이 돼버린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야마잡기식 글쓰기에서 벗어나 묵직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작가는 북한이 더 개방되면 어떤 혼란이 벌어질 지를 다루는 남북한 문제에 관한 소설을 구상 중이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책과 길] 장편 ‘댓글부대’ 작가 장강명 “아내 최후통첩 받고 미친 듯 썼죠”
입력 2015-11-26 1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