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여전히 뒤숭숭한 수능 후 고3 교실… 대학 합격·대입 골몰·재수 준비·쿨쿨 4색 풍경

입력 2015-11-26 05:02

경기도 고양시의 일반계 고교에 재학 중인 3학년 A양(18)에게 남은 학교생활은 ‘시간낭비’에 가깝다. 12월 중순 수능보다 중요한 실용음악과 실기시험을 앞두고 있다. 그는 “실기전형을 준비해야 하는 예체능계나 이미 수시에 합격한 학생 등 반마다 서너명씩 무단결석을 한다”고 말했다.

수능이 끝난 고3 교실 분위기는 겨울방학 전까지 들쑥날쑥하다. 학생마다 대입 전략에 따라 ‘우선순위’가 엇갈리는 탓이다. 학교는 마음이 떠난 학생들을 관리하느라 애를 먹는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교육부의 ‘학사운영 내실화’ 계획이 2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수능이 끝난 교실에서 학생들은 크게 네 부류로 나뉜다. ‘주류’는 A양처럼 대학별고사에 몰두하느라 학교생활이 번거롭기만 한 이들이다. 지난 12일 수능이 끝난 뒤 14일부터 시작된 논술·면접·실기고사 등은 12월 말까지 이어진다. 준비를 위해 무단결석과 조퇴를 하는 학생이 많다.

정시 지원전략을 짜느라 분주한 학생들도 있다. 합격선 예측이 워낙 어려워 상담을 받으러 다니거나 입시정보 수집에 시간을 쓰고 싶어 한다. 일부는 일찌감치 재수를 결심하고 학원 ‘재수선행반’에 등록했다. B양(18)처럼 학생부교과전형으로 이미 대학에 합격한 이들도 있다. 그는 “마음은 벌써 대학생인데 친구들 눈치가 보여 학교에선 잠만 잔다”고 했다.

보통 수능 다음주에 치르는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는 더욱 어수선하다. 서울의 고교 교사 박모(30·여)씨는 “재수생에게만 내신으로 반영되는 시험이라 매년 절반 가까운 학생이 마음대로 ‘찍고’ 자거나 일부러 오답을 적어내는 장난을 친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 ‘수능 이후 자기개발시기 학사운영 내실화 계획’을 내놨다. 각 학교가 진로탐색·인문·예술·체육활동 등으로 교육과정을 재량껏 조정토록 했다. 대전 한밭고는 지난해 금융교육, 성폭력 예방교육, UCC 경연대회, 대학별 면접 대비 프로그램 등을 진행해 모범학교로 꼽혔다. 남미숙 교무부장은 “잠만 자거나 무단결석하는 학생이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대학별 입시설명 프로그램을 넣기도 한다. 경기도 평촌고 공병남 교무부장은 “입시 관련 프로그램이 다른 활동보다 반응이 좋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탁상행정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입시일정이 남은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도 학생들이 집중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정시모집을 기다리는 여고 3학년 김모(18)양은 “차라리 집에 일찍 보내주거나 수능을 더 늦게 치러 고교생활을 잘 마무리하도록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육정책교사연대 이성권 대표는 “현 대입 일정은 고교에 대한 배려 없이 대학 요구에 맞춰져 있다”며 “수능을 12월로 늦추는 등 일정 자체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