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문화 확산, 법·정책 재정비가 답이다] 풀뿌리 NPO 확산… 작지만 재난에 효율 대응

입력 2015-11-25 18:52 수정 2015-11-25 21:13
나보넬 글릭 이스라에이드 최고집행책임자가 지난 18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본부에서 단체 운영과 구호활동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텔아비브 대학 유대인 디아스포라 박물관 내에 있는 이스라에이드 본부의 입구. 사무실 규모는 49㎡로 단출하다.

면적은 한반도의 10분의 1, 인구는 782만명에 불과하지만 이스라엘에는 3만여개의 비영리조직(NPO)이 있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생존자들과 실종·사망자 가족 및 지역사회 심리치료를 지원해 국내에 이름을 알린 구호단체 ‘이스라에이드(IsraAID)’도 그 중 하나다.

이스라에이드는 전쟁과 테러로 고통 받고 있는 유대인을 돕기 위해 2001년 설립된 단체로 세계 18개국 재해 현장에서 트라우마 치유를 돕고 있다.

최근 나눔 문화 선진국에서는 이스라에이드처럼 특수한 목표나 활동에 집중하는 풀뿌리단체가 확산되는 추세다. 대형 NPO보다 유연한 조직을 가진 풀뿌리단체들이 다양한 사회문제에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명한 재정 운용과 전문성을 갖춘 것도 이들 단체의 강점이다.

◇“현장 중심·투명 경영이 경쟁력”=지난 18일 방문한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 안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박물관. 2000년 가까이 떠돌이 생활을 한 유대인들의 한 서린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박물관의 지하 2층 구석에 이스라에이드의 본부가 있었다.

본부 전체의 규모는 49㎡(15평)정도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2010년 아이티 지진, 2011년 동일본대지진 등 29개국의 재난현장에서 100만여명의 트라우마를 치료해온 단체의 본부치고는 초라해 보일 정도로 작고 소박했다.

본부 살림살이도 간소했다. 본부에서 일하는 직원은 6명뿐이고 나머지 200여명의 직원 및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전체 모금액 가운데 본부 운영에 들어가는 돈은 7% 정도. 나머지는 모두 현장에 투입한다. 행정인력 3∼4명을 두는 것보다 재난 현장에 시니어급 전문가 1명을 더 파견하는 게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확신에서다.

나보넬 글릭 이스라에이드 최고집행책임자(COO)는 “우리는 가능한 조직을 작게 유지해 더 많은 전문가들을 현장에 파견하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기부금의 투명한 운용’도 금과옥조로 삼는 원칙 중 하나다. 이들은 설립 초기부터 모금 규모 및 기부금 사용 내역을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하고 있다. 글릭 COO는 “기부금을 잘못 사용하면 기부자의 신뢰를 잃기 때문에 좋은 일을 하는 모든 단체는 부패를 경계해야 한다”며 “기부금은 오직 재난으로 고통 받는 이재민들을 위해서만 사용돼야 한다는 게 우리의 철학”이라고 강조했다.

◇유대교 전통에 기반한 나눔 문화=이스라에이드는 재난이 발생하면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의사나 심리치료사 등 전문가를 현장으로 급파한다. 이들은 정부 관계자 및 현지 전문가 등과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현지 심리치료 전문 인력도 훈련시킨다. 현지 전문가들을 교육·훈련시켜 현장에 맞는 해결책을 처방하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글릭 COO는 이를 ‘고기를 잡아주면 내일 또 잡아줘야 하지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면 그들 스스로 잡게 된다’는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유대인의 자녀교육 노하우를 NPO에 적용한 셈이다. 현지 인력들이 또 다른 현지인을 교육시키면서 지역사회가 스스로 치유 능력을 갖도록 돕는 게 이들의 최종 목적이다.

이스라에이드의 활동은 이처럼 유대교 전통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유대교는 오래 전부터 ‘티쿤 올람(Tikkun Olam·Repair the world)’의 정신을 강조한다. 히브리어인 이 말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각자가 불행한 이들을 힘써 돕자는 의미다.

글릭 COO는 그러나 이스라에이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유대교 전통에 한정된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휴머니티에 근거해 활동하고 있다. 우리는 국제단체이고 파트너 중에는 무슬림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에이드는 실제로 요르단 내 협력단체를 통해 시리아 난민들을 지원하고 있다. 무슬림이 대다수인 시리아 난민들이 반감을 갖지 않도록 단체명은 드러내지 않는다.

정부가 NPO에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동시에 재무정보 공개 등의 규제를 적용해 나눔 문화를 확산하는 영국·미국뿐 아니라 NPO가 공동체의 전통과 가치에 따라 스스로 투명 경영 원칙을 엄수하며 나눔 문화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이스라엘도 한국 정부와 NPO에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장윤주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연구교육팀장은 “그간 우리 정부는 기부자를 보호하기 위해 규제 위주의 정책을 펴 왔는데 앞으로는 NPO들과 자주 소통하며 이들의 자율적 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을 펼쳤으면 한다”며 “NPO도 기부자와 자주 소통하며 투명한 조직 관리를 위해 노력한다면 나눔 문화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텔아비브=글·사진 이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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