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보를 받고 나왔다는 남대구세무서 조사팀장 배모(52)씨는 남의 회사에 사무실을 차리고 눌러앉았다. 세무조사 대상은 대구 달성공단의 자동차부품 포장상자 제조 업체였다. 연매출 150억원, 직원 60명 정도인 중소기업이다. 배씨는 올해 2월 25일 부하직원 3명을 대동하고 이 회사에 처음 나타났다.
이들은 일하는 데 쓰겠다며 책상과 컴퓨터를 요구했다. 회의실에 하루 종일 머물며 온갖 자료를 요구하는 통에 회사는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배씨는 한 달이 넘도록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세무조사는 4월 10일까지로 예정돼 있었다.
이 업체 대표 홍모(66)씨는 ‘원래 다 이런 건가’ 싶었다고 한다. 개인사업자로 운영하던 회사를 2012년 7월 법인으로 전환하고 처음 받는 세무조사였다. 배씨가 무슨 제보를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잡듯 뒤지는 모습을 보니 그냥 물러갈 성 싶지 않았다. 몇 년 전 ‘납세자의 날’에 성실 납세자로 세무서장 표창까지 받은 자신이 ‘탈세범’ 오명을 쓰게 될 수도 있었다. 그 역시 세금을 줄이려고 남들 다 쓰는 편법 정도는 써 왔다.
“세무조사는 그냥 안 끝나. 세무서 직원들이랑 합의해야 끝나고, 그래야 세금도 덜 맞아.” 한창 부담을 느끼던 어느 날 홍씨는 다른 제조업체 사장들과의 친목 모임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배씨가 저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홍씨는 그에게 “세무서장한테 인사할 테니 만나게 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
홍씨는 3월 27일 세무서장 김모(57)씨를 만날 수 있었다. 서장실에서 마주앉은 그에게 홍씨는 “세무조사 때문에 힘드니 잘 좀 봐 달라”고 했다. 닷새 뒤인 4월 1일 다시 찾아가선 검은색 노트북 가방을 건넸다. 가방엔 노트북컴퓨터 대신 5만원 지폐 1000장이 들어 있었다. 앞서 배씨는 “세무조사를 하면 세금이 20억원쯤 부과될 텐데 (서장을 만나면) 50% 정도는 감경될 수 있다”고 말했었다.
홍씨 업체에 부과된 세금은 10억원 정도다. 배씨 말대로 된 것 같지만 실은 정상적으로 매겨진 액수였다. 게다가 김씨에게 돈을 건네기 전날인 3월 31일에 결정된 세액이다.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뇌물은 뇌물대로 건넨 셈이다. 세무조사는 사실 초반에 다 끝난 상태였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김씨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 23일 구속했다. 지난 6월 대구지방국세청 조사2국장으로 옮긴 그는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지난달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배씨는 김씨와 같은 혐의로, 홍씨는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투甲스’ 세무공무원 비리 콤비… 조사팀장, 회사 상주 횡포 참다 못한 업체 결국 청탁
입력 2015-11-25 18:57 수정 2015-11-26 0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