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빌리면 된다” 했던 YS… 친구에서 면사무소 직원까지 심야통화로 민심 들었다

입력 2015-11-26 05:03 수정 2015-11-26 14:02
강신명 청장(오른쪽) 등 경찰 지휘부가 25일 국회 본관 앞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경찰청 제공
‘머리는 빌려도 건강은 빌릴 수 없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건강을 강조한 얘기지만 뒤집으면 올바른 판단을 위해 끝없이 조언을 구했다는 말도 된다. YS는 대통령 취임 2년차였던 1994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사람으로부터 듣기도 하고 저 사람으로부터 듣기도 하고, 또 사적으로 듣기도 하고 공적인 채널을 통해서 듣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보고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평전들을 보면 YS의 국면전환용 정치적 결단 원천은 많은 조언자들의 의견을 참고한 자신감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YS는 공식 채널 보고나 독대뿐 아니라 민심 수렴을 위해 심야 통화를 애용했다. 기관 정보에만 의존할 경우 정확한 국민의 소리를 듣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상도동 자택에 머물던 시절 지인 800여명의 연락처를 간직해 청와대에 들어간 YS는 주로 밤 9시 TV 뉴스가 끝난 뒤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 통화를 했다. 상도동계 한 인사는 25일 “통화 상대는 학교 동창부터 고향 친구, 식당 주인, 면사무소 직원 등 주로 야당을 이끌던 시절 인연을 맺었던 일반 시민이 많았다”고 전했다.

정책 결정에 관한 논의가 필요할 때는 경제계 법조계 학계 등 오피니언 리더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재계 인사 중에는 고(故) 구평회 E1 명예회장, 고 김웅세 전 롯데물산·월드 사장과 가까웠다. 김 전 사장은 YS의 차남인 현철씨 장인이다. 김 전 사장은 YS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 채널 중엔 지근거리에서 YS를 보좌했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대표적인 조언자로 꼽힌다. 박 전 의장은 합리성을 바탕으로 개혁 정책을 총괄했고, YS가 “볼수록 맘에 든다”고 평가한 바 있다. 김영삼정부 초대 통일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전 서울대 교수는 내치뿐 아니라 외치의 큰 틀을 논의하는 YS의 조언자였다.

물론 강력한 조언그룹은 상도동계로 불리는 측근들이었다. 특히 ‘좌(左)동영 우(右)형우’로 불렸던 최형우 전 내무장관과 고 김동영 전 정무장관은 YS와 언제든 독대할 수 있는 최고 실세였다. 최 전 장관은 여당 사무총장 재임 시절 1주일에 두 번 정도 청와대를 방문, YS와 협의해 당 기구 축소, 재산공개 파문을 특유의 돌파력으로 해결했다. 김 전 장관은 대학 졸업 후 비서진에 합류한 뒤 지략과 충성심으로 ‘YS 대통령’을 탄생시킨 공로자다.

교육 분야에선 김영삼정부에서 교육부 장관에 올랐던 고 박영식 전 연세대 총장과 서울대 이명현 명예교수가 조언자로 꼽힌다. 두 사람 다 문민정부의 교육 개혁을 주도했다. 군 문제와 관련해선 고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의 조언을 많이 들었다. 또 경남고 동기동창 모임인 삼수회 멤버들도 허심탄회한 대화 상대들이다.

사적 채널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선친인 고 김홍조옹과 차남 현철씨다. 멸치잡이 사업을 크게 했던 김옹은 YS가 1954년 거제 지역구에서 민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할 때부터 아들의 정치인생을 뒷받침해 왔다. 현철씨는 각 분야에 걸쳐 솔직한 의견을 YS에게 개진했으나 임기 막판 국정 농단의 장본인으로 지목돼 국민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