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나는 고발한다, 직접 보고 경험한 북한의 참혹한 실상을…

입력 2015-11-26 18:41
탈북 여대생의 회고록이 나왔다. 저자는 23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에 재학 중인 박연미(사진)씨다. 박씨는 지난해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 연설을 계기로 국제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영어로 북한의 실상과 탈북 과정을 말할 수 있는 탈북자가 드문 상황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박씨는 세계 각국의 강연과 인터뷰, 기고 요청에 응하며 국제사회에 북한을 고발하는 증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은 그녀의 이야기에 대해 “세계를 기만하는 광대극”이라고 비난했다.

박씨의 책은 세계적인 출판사 펭귄에 의해 지난달 영어로 먼저 출판됐다. 원제는 ‘In Order to Live(살기 위해서).’ 이번 한국어판 출간과 동시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도 책이 나왔다. 탈북자 이야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박씨의 책이 국내 독자들의 가슴을 두드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박씨는 함경남도 혜산 출신으로 열세 살에 엄마와 함께 압록강을 건넜다. 책은 박씨의 북한 시절을 상세하게 다룬다. 가족들과 친구들 이야기지만 북한 현대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북한 사회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 이해하게 해준다.

“오후가 되면 다 같이 행진하면서 육체노동을 하러 갔으므로 항상 책가방에 작업복을 넣고 다녔다.”

“북한의 시골에 사는 사람을 붙잡고 ‘꿈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은 ‘죽기 전에 평양에 한 번 가보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북한의 의료비는 무료여야 하지만 의사들은 수술비를 요구했다. 너무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의 지원이 거의 없으니 의사들로서는 뇌물만이 유일한 생존수단이었다.”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1990년대 북한은 극심한 기근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던 시기였다. 또 국가의 배급시스템은 붕괴되었고, 초보적인 시장 형태인 ‘장마당’이 막 부화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해외 미디어가 유입되기 시작했으며 탈북이 빈번하게 이뤄졌다.

박씨는 이런 환경에서 자란 자기 또래들을 ‘장마당 세대’로 규정하면서 “우리는 시장이라는 존재와 함께 성장했고 정부가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배급해주던 시절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부모 세대와 달리 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심이 없다”고 설명한다.

박씨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서 탈북을 했다고 한다. 탈북의 기회를 잡은 13세 소녀는 아버지 때문에 주저하는 어머니를 강하게 설득한다.

“연미야, 아픈 네 아버지를 두고 갈 순 없다. 너 혼자 가야 돼.”

“안 돼. 지금 엄마 손을 놓으면 엄마는 북한에서 굶어 죽을 거야. 엄마 두고 못 가.”

그렇게 압록강을 건넌 모녀는 중국 땅에서 2년 여간 체류했다. 중국 체류기는 이 책에서 가장 가슴 아프게 읽힌다. 탈북자들은 곧바로 중국의 브로커들 손에 넘겨지고, 성폭행과 인신매매로 이어진다. 탈북 여성들은 자동차라도 되듯 1년간의 환불 보증 기간이 붙은 채 판매된다. 공안에 신고만 하면 체포돼 북한으로 돌려보내지는 운명의 탈북자들은 노예의 처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박씨는 어머니가 중국 농부에게 팔려가는 것을 지켜봤고, 자신도 중국 브로커의 여자로 살아야 했다. 이 때의 경험은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용감하게 공개하는 이유가 되었다.

“나를 비롯한 탈북 소녀와 여성들이 중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 했던 일을 생각하면 구역질이 날 것 같다…. 나는 인신매매의 충격적 실태가 알려지기를 바란다. 중국 정부가 북한 난민들을 강제 북송하는 무자비한 정책을 중지한다면 브로커들은 탈북 여성들을 착취하고 노예로 부릴 수 있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

모녀는 살기 위해서 또 다시 목숨을 걸 수밖에 없었다. “북한 사람이 중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범죄지만 남한으로 탈출하려는 것은 중대한 반역죄였다.” 그러나 둘은 남한행을 결정했다. 선양에서 칭다오까지 1200㎞를 버스로 이동하고, 칭다오에 있는 선교단체 도움으로 한겨울 영하 32도까지 떨어지는 밤의 고비 사막을 건너 몽골에 도착한다.

모녀는 2009년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뒤 국가정보원과 하나원을 거쳐 충남 아산에 정착했다. 먼저 탈북을 시도했다 실종된 언니가 7년 만에 남한에 들어와 현재 세 가족이 같이 살고 있다.

탈북자 이야기에는 흔히 과장이나 신파라는 혐의가 따라 붙고, 안보논리에 이용된다거나 상업성을 노렸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박씨의 책이 이런 논란을 피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만 믿기 어려운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으며 감정만 건드리는 책들과 다르다는 건 분명하다. 그녀는 언제까지 이런 비극을 외면할 것인지 묻는 듯 하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