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커피, 붉은 살코기, 비만’의 공통점은? 다수의 사람은 ‘건강에 해로운 것’이라고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술의 해악이야 말할 필요가 없고 커피와 붉은 살코기도 세계보건기구(WHO)가 암을 일으킬 수 있는 물질로 분류해 놓고 있다. 비만 역시 건강의 적이라는 것은 통설이다.
최근 이 사실들을 다소 거스르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하루 소주 3∼4잔을 마시면 뇌졸중 위험도가 낮아진다’ ‘커피가 암 및 당뇨병 발병률과 사망률을 낮춘다’ ‘붉은 살코기가 동양인 여성에겐 암 발생률을 낮춘다’ ‘50대 이상엔 적당한 비만이 사망위험률을 줄이고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식이다. 공신력 있는 곳의 자료라 허투루 들을 수 없다. 서울대 의대,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고려대 의대 같은 전문가 집단이 이달에 내놓은 결과다.
일반적인 건강상식과 모순인 듯한 이 데이터들은 대체로 호메시스(Homesis)이론과 부합한다. 미국 미주리대 러키 교수가 정립한 이 이론은 다량의 방사선은 피해를 주지만 소량의 방사선은 생리활동을 자극해 수명 연장, 성장 촉진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호메시스는 그리스어로 ‘자극한다’ ‘촉진한다’는 뜻이다. 의료계는 ‘낮은 농도의 독은 오히려 건강에 이롭다’는 논거로 받아들인다. 독으로 치유하는 역설적 건강법인 셈이다. 술, 커피, 붉은 살코기, 비만도 마찬가지다. 이분법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다. 관건은 ‘적정 여부’다. 건강한 사람에게 적당 양의 술과 커피, 붉은 고기는 몸을 각성시키고 재생 체계를 가동해 몸 상태를 최적화한다고 한다. 장년 이상에게 중간정도 비만은 좋은 면역세포 생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말이 다가온다. 추워지면서 활동량은 줄고 모임은 잦다. 건강에 적신호를 울릴 소지가 크다. 즐기면서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과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알지만 그것마저 지키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긴 하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건강의 역설
입력 2015-11-25 17: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