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우리가 잘 아는 ‘돌아온 탕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자기의 분깃을 아버지에게서 얻어 나간 아들이 모든 것을 탕진하고 결국 아버지에게 다시 돌아와 회복을 경험하는 내용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함축돼 있습니다.
먼저 탕자가 경험한 비극이 무엇으로부터 시작됐는지 생각해봅시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 중 일부를 자신의 것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자기의 분깃을 요구하는 탕자의 태도입니다. 그는 “내게 돌아올 분깃”이라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탕자의 불행이 시작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언제나 ‘행위’보다는 그 행위의 주체가 되는 ‘존재’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이 ‘존재’로부터 출발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존재’의 정의는 무엇입니까. 창조입니다. 창조주가 무에서 창조물(존재)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창조란 어떤 피조물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대전제입니다. 그러므로 피조물의 대표 격인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갖는 가장 중요한 기본적 태도는 ‘은혜’입니다. 은혜란 어떤 것도 내 힘과 공로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신앙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의 존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결국 창조적 신앙이란 기독교의 본질적 신앙, 한마디로 ‘은혜를 입은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가장 분명한 예가 바로 부모님과 자녀의 관계입니다. 어떤 자녀도 스스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첫 출발에 자신의 힘이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 출발을 아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이란 자신의 존재를 아는 인간의 성숙함입니다. 은혜의 신앙은 삶 안에 자신의 분깃이 아닌 하나님의 분깃으로 가득 찬 것을 말하며 그때 인간은 가장 풍요롭고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탕자가 자신의 분깃을 요구한 것은 바로 그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은 내 분깃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소유하신 아버지 자체에 초점을 둡니다. 아버지 없는 분깃은 은혜 입은 아들에게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존재의 이유와 출발이 되신 아버지가 중요합니다. 자기의 분깃을 주장하던 탕자는 결국 모든 소유를 잃고 아버지에게로 돌아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 아들의 존재감을 회복시키는 데 최선을 다합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신앙의 위기는 은혜를 잊고 자기 분깃을 요구하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예수를 따라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가득 채워진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탕자처럼 자기의 분깃을 마땅히 주장하는 나를 십자가에서 완전히 처단하십시오. 자기의 분깃을 요구하는 소리로 가득한 세상에는 해답이 없습니다. 나의 분깃은 죽고 생명이신 하나님의 존재가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유일한 답입니다.
조지훈 기쁨이있는교회 목사
[오늘의 설교] 마땅히 여기는 태도가 가진 함정
입력 2015-11-25 17: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