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 고유가 상황에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키우고 석유집약도를 꾸준히 개선하도록 석유세를 부과하고, 전기와 상하수도 등을 포함한 제반 공공서비스의 요금을 낮게 하며, 기술 혁신을 위한 연구개발(R&D)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는 정책을 펼쳐 왔다. 그 결과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의 석유집약도는 50%나 개선돼 같은 제품을 절반의 석유로 만들게 되었고, 산업용 전기요금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 되어 철강, 석유화학 산업 등의 경쟁력을 향상시켰다.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저유가가 우리 기업들의 원가 부담을 낮춰 국내 산업을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으리라 기대됐으나 아쉽게도 결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저유가와 더불어 국제 정세의 불안정, 예기치 못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잇단 테러 등이 겹쳐 신흥시장의 구매력과 수요가 급격히 위축됐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생산비 절감이 수출 증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실질구매력 상승에 의한 내수시장 확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저유가는 고유가가 주던 어려움을 스스로 사라지게 하는 단초가 아니었다. 미답의 답을 찾아야 하는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올 한 해 있었던 다양한 정책들 가운데 대표적인 성공 사례를 꼽자면 에너지 신산업 정책이 있다. 도서지역의 디젤 발전기를 신재생 발전으로 전환하는 에너지 자립섬 사업, 대규모의 화석연료 발전소를 ICT(정보통신기술) 융합 기술로 대체하는 지능형 수요관리 사업, 수출에 집중하던 배터리 기술을 국내 전력망 고도화에 적용한 주파수 조정용 ESS 사업 등이 에너지 신산업 정책의 성공적인 사례들이다. 이들 사업에서 국내의 많은 중소·중견 기업들이 적극적인 준비와 투자로 참여했고, 성공한 기업들은 환호했다.
에너지 신산업 정책은 정부와 공기업이 시장을 선도하며 국내 기업들에 매출을 늘려주는 내수 부문의 총수요 유발 정책이라는 점에서 저유가 상황에 맞는 경제 정책의 성공 사례라고 할 것이다. 특히 우리 경제의 모멘텀 전환이 시급한 이때 저유가 상황에서 다양한 성공 사례를 일구었음은 향후 정책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재 국내 기업들은 경기 침체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에 소극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 유보되는 저유가 이익을 공공재정 확충으로 이끄는 정책이 필요하다. 고유가 상황에서와 반대로 공공서비스 요금을 인상해 재정을 확충하는 정책을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 현재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호주의 경우 전기요금 인상 후 2만대에 불과하던 태양광 발전 시스템이 100만대 이상으로 급증하는 등 에너지 기술 혁신과 함께 에너지 분야 신성장동력 창출 효과를 거두었다. 우리나라도 전기요금 인상으로 신재생과 같은 친환경 에너지 보급 확대를 유도하고, 요금 인상으로 확충한 재정을 활용해 성공적인 정책 모델이 된 에너지 신산업 분야의 공공사업을 적극 펼칠 것을 권하고 싶다.
정부와 공기업의 적극적인 지출 확대는 내수 부문 중소·중견기업 매출을 견인하고, 국내 생산과 일자리를 늘려줄 것이다. 우리 기업들에 공공 부문이 약속하는 내수 지출만큼 실질적인 도움은 없을 것이다. 에너지 신산업은 저유가인 지금, 새로운 에너지 신시장으로의 전환을 꿈꾸는 우리나라에 다시 오기 어려운 기회다.
홍준희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
[기고-홍준희] 저유가 이기는 에너지 정책
입력 2015-11-25 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