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號에 새 리더십을 묻다] ‘분명한 철학’으로 對北·국제관계 흔들리면 안돼

입력 2015-11-24 22:12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에 마련된 김 전 대통령 분향소에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진행했던 대북 및 외교안보 정책은 뚜렷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후 정부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과 탈(脫)냉전이라는 세계적 조류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의 대외 정책기조는 유화와 강경을 오락가락하며 제대로 된 미래전망을 갖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지원을 처음 시작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촉구했다는 긍정적 평가도 만만찮게 제기된다. 정치·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만큼은 지속하겠다는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 원칙주의 외교기조와도 일맥상통한다는 의미다.

YS는 1993년 2월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같은 해 3월 12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김영삼정부는 출발부터 위기를 맞는다. YS는 결국 “핵을 가진 자와는 결코 악수할 수 없다”고 선언, 대북 강경노선으로 급선회하고 말았다. 결국 그의 유화적인 대북정책은 ‘제1차 한반도 핵 위기’라는 악재 속에 강경책으로 선회한 것이다.

성기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2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YS는 집권 초 최초의 문민 대통령이라는 자부심에 따라 남북관계를 강하게 밀어붙였다”면서 “의도는 좋았으나 불운이 겹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YS는 일련의 사건들을 계기로 큰 틀에서 원칙이 크게 바뀌었다”면서 “적극적인 의지와 함께 긴 안목을 갖춘 대북정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이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적 대북지원이 처음 이뤄진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고난의 행군’ 시절인 1995년 북한은 우리 측에 처음으로 식량지원을 요청해 왔으며, 김영삼정부는 쌀 15만t을 지원했다. 인도적 지원 과정에서 남북 간 신뢰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긴장해소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던 셈이다. 그러나 이 기회는 예정됐던 김일성 주석과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급작스러운 김 주석 사망으로 무산되면서 사라졌다.

대일(對日)외교에서 YS는 지나치게 강경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995년 한 일본 정객의 망언에 대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한 그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김영삼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내놓은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일본의 자구조치’ 원칙을 제시했다. 비록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우리 정부가 하되, 일본에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겠다고 했지만, 이후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다시 말해 도덕적 우위에 입각한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원칙론 패러다임을 처음으로 열었다는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연구소장은 “YS 이전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는 한·일 간 경제의존 때문에 일본에 할 말을 제대로 못했다”며 “일본과 안보·경제 측면에서 의존성이 줄며 당당한 ‘도덕 외교’를 펼친 점은 지금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이 소장은 “결국 도덕적 우위에 선 원칙론적 과거사 외교이며 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면서 “지금은 도리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에 무엇을 요구할지 분명치 않은 면이 있다”고도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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