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통합, 김재준 목사 63년 만에 복권 추진한다

입력 2015-11-24 18:15 수정 2015-11-25 19:43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총회장 채영남 목사)이 교단에서 파면했던 장공 김재준(1901∼1987·사진) 목사에 대한 복권을 추진하고 있다. 김 목사가 교단에서 쫓겨난 지 63년 만이다. 제100회기 총회 주제가 ‘화해’인 만큼 과거 파면됐거나 교단을 떠났던 교회 혹은 개인을 다시 끌어안겠다는 취지에서다.

예장통합 관계자는 24일 “김 목사를 특별사면 조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예장통합은 특별사면 관련 법조항을 신설키로 하고 현재 각 노회에서 가안을 검토하고 있다. 법조항이 만들어지면 특별사면위원회를 구성한 뒤 김 목사의 특별사면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이 관계자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 내년 부활절(3월 27일)쯤 최종 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교회가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진보 신학자다. 일본 아오야마학원과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웨스턴신학교 등에서 공부한 김 목사는 1940년부터 조선신학교(한신대)에서 성서의 자유로운 해석을 추구하는 성서비평학을 가르쳤다. 성경의 모든 글자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돼 오류가 있을 수 없다는 축자영감설에 반대했다.

김 목사는 당시 주류였던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에 대해 “교묘하게 위장한 정통적 이단”이라고 공격했고, 보수 성향의 목회자들은 김 목사를 “자유주의 이단아”라고 비판했다. 김 목사의 신학은 1947년 열린 장로교 총회에서 본격 도마에 올랐다. 조선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신학생 중 51명이 김 목사의 신학사상을 거부하는 탄원서를 총회에 제출했다. 박형룡(1897∼1978) 목사 등 보수 성향의 목회자들도 “김 목사가 성서의 권위를 파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1949년 35회 총회에선 조선신학교에서 나온 학생들을 중심으로 교육하던 장로회신학교를 인준했다. 전쟁 중이던 1951년 치러진 36회 총회에선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를 통합해 새로 직영신학교를 만들기로 하고 그해 9월 총회신학교를 설립했다. 총회신학교가 교수와 직원을 채용할 때 조선신학교 출신을 배제하자 김 목사는 36회 총회의 회의진행 방법과 신학교 설립의 불법성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다. 1952년 열린 37회 총회에선 김 목사를 면직처분하고 조선신학교 출신 교역자 채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김 목사를 비롯해 이 결정에 반발한 목사들은 이듬해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를 창립했다.

김 목사는 삶 속에서도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정희 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며 영구집권의 야욕을 드러내자 1969년 8월 15일 삼선개헌 반대서명을 주도했다.

김경재 장공김재준목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김 목사는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1000만명이나 있으면서도 한국사회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늘 문제시했다”며 “시대는 이미 너무 많이 흘렀지만 이제라도 교단이 김 목사 복권을 추진해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