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50여개 대학 교수 200여명이 남의 책을 표지만 바꿔 발간하는 ‘표지갈이’를 하거나 이를 묵인한 혐의로 검찰에 적발됐다. 수십년 동안 대학가에서 만연한 교수들의 비리 관행이 검찰 수사를 통해 처음으로 공식 확인됐다. 검찰은 이들을 전원 기소할 방침인 데다 대학 당국은 선고 결과를 교수 재임용 시 반영한다는 방침이어서 무더기 교수 퇴출 사태가 예상된다.
의정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권순정)는 24일 ‘표지갈이’ 수법으로 책을 내거나 이를 눈감아준 혐의(저작권법 위반·업무방해)로 전국 50여 대학 교수 200여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또 교수들의 표지갈이를 묵인하고 책을 발간해준 3개 출판사 임직원 4명도 입건했다.
교수들은 전공서적 표지의 원저자명만 바꿔 새 책인 것처럼 출간했고, 일부 교수는 책 제목에 한두 글자를 넣거나 빼는 수법으로 표지갈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 국공립 대학과 서울의 유명 사립대 등 전국 50여곳 대학 교수들이 적발됐으며 이들 중에는 스타 강사와 각종 학회장도 포함됐다.
검찰 조사 결과 교수 1명이 대체로 전공서적 1권을 ‘표지갈이’했으나 일부 교수는 3∼4권까지 펴낸 것으로 드러났다.
표지갈이는 전공서적을 지은 교수와 저자 이름만 넣은 교수, 출판사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생긴 범죄다. 남의 연구 성과인 책을 통째로 가로채는 허위 저자들은 재임용 심사나 연구용역 수주에 이용하기 위해 표지갈이를 했다. 책을 펴내면 대체로 연구실적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업 교재로 제자들에게 팔아 인세를 챙길 수도 있다.
원저자인 이공계 교수들은 출판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동료 교수와 출판사의 표지갈이 행태를 묵인해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공계 관련 서적은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신간을 내려면 출판사를 미리 확보해야 한다. 출판사들이 이공계 교수들의 약점을 간파하고 이를 역으로 악용해 온 셈이다.
출판사들은 표지갈이로 1석3조의 이득을 얻었다. 잘 팔리는 전공서적 저자가 다른 출판사로 옮기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고, 원저자와 허위 저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저자 풀’을 확보할 수도 있다.
또 출판사는 팔다 남아 창고에 쌓인 전공서적 처리에도 표지갈이를 활용했다. 저자 이름만 바꾸면 해당 교수에게 수업 받는 학생들이 재고 서적을 사게 되는 점을 노렸다. 출판사는 재임용을 앞둔 교수들에게 표지갈이를 노골적으로 권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교수는 한번 표지갈이를 했다가 출판사에 약점 잡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름을 빌려줬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
이들은 동료 교수의 연구 성과를 통째로 훔쳐 새 전공서적을 출간하고 이를 제자들에게 팔아 돈벌이까지 했다는 점에서 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대 범죄로 평가된다.
검찰은 다음 달 중순까지 수사를 마무리하고 입건된 교수 전원을 기소할 방침이어서 내년 3월 개강을 전후해 교수들의 무더기 퇴출 사태가 벌어질 전망이다.
의정부지검 관계자는 “표지갈이는 1980년대부터 출판업계에서 성행한 수법이지만 그동안 수사망에 걸려들지 않았다”며 “공소 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는 만큼 입건된 교수들은 법원에서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의정부=김연균 기자 ykkim@kmib.co.kr
‘표지갈이’ 200여명 적발 교수사회 풍비박산… 초유의 무더기 퇴출 예고
입력 2015-11-24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