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는 ‘통합과 화합’이었다. 차남 현철씨는 “2013년 입원 이후에 잘 말씀을 못하시던 아버님이 필담으로 두 단어를 썼다. ‘무슨 의미입니까’라고 물었더니 우리가 필요한 거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그 이후에는 필담도 대화도 거의 불가능했다고 하니 유언이자 정치적 메시지인 셈이다.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의회주의자이자 민주주의자로서 살았다. 최연소에 9선 의원, 원내총무(원내대표) 5번, 야당대표 3번, 여당대표 등의 경력이 말해주듯 그의 정치는 의회가 절대적인 중심이었다. 엄혹한 독재 시절에 거리로 나왔을 때도 의회가 반독재 투쟁의 가장 적합한 장소이자 도구임을 잊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과 유지(遺志)를 놓고 서로 유리하게 해석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에 활용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설전은 한마디로 지금의 정치 수준을 보여준다. 양당 지도부는 한결같이 ‘통합과 화합’의 뜻을 이어가자고 하면서도 진흙탕 싸움인 현 정치 상황을 상대 탓으로만 돌린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최고위원회의 발언을 통해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 속에서도 국회 일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의회주의자였다”면서 야당을 겨냥해 노동개혁법안·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와 테러방지법 제정 등을 처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도 “고인의 뜻을 세우는 첫 기회가 이번 정기국회”라며 야당의 법안 처리 협조를 요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어떤 독주와도 타협하지 않은 진정한 민주주의자”라면서 최근 광화문시위 진압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 등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도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업적을 높이 기리면서 “김 전 대통령이라면 단식투쟁으로 국정화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여권을 비판했다.
국민적 추모 분위기가 확산되자 여야 정치인들이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김 전 대통령의 업적과 유지를 활용하는 정략은 꼴불견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큰 정치가가 없어진 지금의 정치는 눈앞의 소리(小利)나 패거리 이익에 따라 휘둘리고 있다. 평생 민주화 동지이자 숙적이었던 양김은 때론 협력, 때론 경쟁으로 정치를 이끌어 왔다.
여야 간 정쟁, 여야 내부에서의 패거리 싸움에 대해 정치권 자체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다. 여야는 김 전 대통령의 업적과 유지를 놓고 벌이는 치졸한 설전을 중단하고 좀 더 큰 정치를 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지도 ‘용서와 화해, 평화’였다. 양김의 유지가 비슷하다. 여야 지도부는 주고받으면서 생산적인 정치를 해 나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게 진정으로 두 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다.
[사설] 여야, YS 遺志 정략적 이용 말고 생산적 정치 힘쓰라
입력 2015-11-24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