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에 묻힌 功… YS 재평가 움직임 활발

입력 2015-11-24 22:04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인 1993년 3월 청와대 집무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첫해인 당시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하고 하나회를 해체하는 등 개혁정책을 실시했다. 연합뉴스DB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그의 공과(功過)가 재평가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 비해 추모 분위기는 차분하지만 YS 개혁에 대한 재조명뿐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초래 책임도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재평가 작업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서거 후 과(過)보다 공(功)에 주목=퇴임 후 YS는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아들의 정치개입과 임기 막판 ‘IMF 사태’로 급격히 냉각된 국민여론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실제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YS는 최하위권이었다. 지난 8월 한국갤럽의 광복 70주년 여론조사 중 ‘우리나라를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YS를 꼽은 응답자는 1%에 불과했다. 이승만(3%) 전두환(3%) 전 대통령보다 후순위였다.

하지만 서거를 계기로 YS 생애를 한 부분만으로 평가하는 게 합당치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24일 “더 나은 업적을 남긴 대통령을 우선 선택한 탓도 있겠지만 YS에 대한 모든 평가를 임기 막바지에 터진 IMF 외환위기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IMF 사태 역시 YS의 책임만으로 돌리긴 애매하다고 말한다. 군사정권부터 누적된 대기업 내부 부실이 한꺼번에 터진 게 IMF 사태의 주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이날 발표한 YS 추도사에서 “1996년 말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로 노동법이 백지화됐다”며 “노동법이 백지화되지 않았다면 IMF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그동안 과소평가됐던 개혁 업적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하나회’ 척결, 역사바로세우기, 정경유착과 금권선거를 뿌리 뽑기 위한 금융실명제 도입 및 선거공영제 확대 등에 대해 대한민국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는 전문가들의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인재를 양성하고, 군부의 사조직을 정리하는 등 민주주의를 공고화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한 것은 큰 공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치권 “YS 재평가해야”=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YS에 대한 세간의 혹평과 관련, “솔직히 말하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이 비겁했다”고 비판했다. 1997년 대선 정국을 전후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YS를 IMF 환란의 주범으로 낙인찍어 희생양 삼는데도 당시 한나라당이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저는 YS는 공이 7이고 과가 3이라고 평가하고 싶다”며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한 경제발전 성과 위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이뤄졌다”고 말했다. 서 최고위원은 “IMF 이후 YS 개혁은 그동안 땅속에 묻혔다”며 “서거하고 업적이 재평가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도 YS를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 투사’라고 규정하며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등 그 누구도 하지 못했을 과감한 개혁조치로 민주주의 새 장을 열었던 위대한 지도자였다”고 치켜세웠다.

물론 정치권엔 YS의 3당 합당 선택이 결과적으로 야권 분열과 지역주의 고착을 가져오고, 대통령의 아들이 비리 혐의와 관련해 최초로 구속된 오점은 공이 많다고 해도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도 여전하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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