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철저하게 망가졌어요. 하던 일을 그만뒀고, 무서워서 밖에 나갈 수조차 없어요.”
30대 모로코 여성 나빌라 바카타는 지난주 친구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바카타의 얼굴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파리 테러에 대한 외신 보도에서 ‘테러범’ 낙인이 찍힌 자신의 사진을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주 영국 데일리메일이 프랑스 생드니 검거작전에서 사망한 아스나 아이트불라센(아래 사진)의 얼굴이라며 목욕 중인 바카타의 사진(위 사진)을 독점 공개한 이후 그는 졸지에 ‘욕조 안의 폭력배’가 됐다.
미국 CNN과 허핑턴포스트 등은 바카타의 사진이 아이트불라센인 것처럼 잘못 퍼진 뒤 그가 고통 속에 살고 있다고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아이트불라센 역시 ‘서유럽 최초의 여성 자폭테러범’으로 지목됐다가 제삼자가 폭탄을 터뜨린 것으로 확인되면서 누명을 벗기도 했다.
바카타까지 파리 테러의 후폭풍이 만들어 낸 무고한 오명의 희생자가 벌써 2명째다.
바카타는 CNN 인터뷰에서 “나는 (소셜미디어에) 욕조에 있는 사진을 게재한 적이 없다. 특히 아이트불라센과 나는 전혀 닮지 않았다”면서 사이가 나빠진 옛 친구가 자신의 사진을 기자에게 팔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모로코 태생으로 1998년 프랑스로 이주했다가 패션디자인 학위를 취득하고 2007년 다시 모로코로 돌아왔다.
바카타는 “우리 가족은 충격에 빠졌고 몇몇 친척은 나와 말도 하지 않으려 한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또 “나중에 프랑스를 방문하려 하면 엄청나게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며 자신의 사진을 건넨 이와 받은 기자를 고소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언론인윤리위원회(SPJ)의 앤드루 시먼 위원장은 허핑턴포스트에 “(바카타의 사진이) 보도사진이 아니라 따로 구입한 것이기에 해당 언론들은 특히 더 많은 주의(확인)를 기울였어야 했다. 그게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언론들이 확인도 안 하고 그 사진을 받은 것이 더 충격적”이라면서 “누군가를 고발하는 보도일수록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내 사진이 자폭 테러리스트?”… 테러범 오인받은 모로코 여성
입력 2015-11-24 2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