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인천의 한 노인복지시설. 붉은 블라우스에 검은색 바지와 구두로 멋을 낸 여성들이 어르신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섰다. 그들의 손엔 은색 플루트가 빛났다. 그 가운데 검은색 정장을 한 중년 여성이 대표로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박하실(62·서울 마장동 은평교회) 단장. 10년째 플립스 플루트오케스트라 활동을 하고 있는 ‘에너자이저’ 권사님이다. 단원 4분의 3이 비크리스천이지만 박 단장의 열정적인 봉사활동과 교회 생활을 아는 이들은 박 단장을 권사님이라 부른다. 단장 5년째 장기집권. 하지만 투표 때마다 재선되어 그만둘 수도 없다.
이날 박 단장이 이끄는 오케스트라는 신나는 트로트를 연주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목포의 눈물’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이 메들리로 이어졌다. 따분한 클래식 연주이려니 생각했던 어르신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의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 이르면 관객들 눈가가 촉촉해진다. 찬송곡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언제 어느 곳에서 들어도 명곡이다.
“플루트로 트로트 연주가 가능하냐는 분들이 많아요. 알토 플루트와 베이스 플루트 그리고 피콜로 등으로 화음을 맞추면 충분히 가능하죠. 지휘자 이소영(플루티스트) 선생님이 봉사 공연을 위해 편곡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저희는 위로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연주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그들은 올해 40여 회 봉사 공연을 다녔다. 충남 보령시의 지하 개척교회인 강물교회 등을 비롯한 전국 곳곳의 교회와 인천 강화보육원 인하대병원 길병원 등이 무대였다. 공연은 회비와 크리스천 단원의 자비량으로 이뤄진다. 떡과 과일 등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인천 부평아트센터를 중심으로 활동합니다. 플루트를 좋아하는 인천지역 여성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제가 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것은 세상 속의 선한 이들이기 때문이죠.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우물가의 여인’과 같은 분들이세요. 크리스천에 대한 편견을 가진 분들도 있으나 봉사 다니다 보면 금방 편견을 깨세요. 저는 세상 속에서 이들과 함께 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해야겠다 싶었습니다.”
박 단장은 4대째 신앙가(家)로 부산 덕천교회가 모교회다. 교회 청년 양신석(67·은평교회 원로장로)과 결혼, 서울로 올라온 후 35년째 은평교회를 섬기고 있다.
“1980년대 초반 서울 마장동과 그 인근 지역은 참 가난했어요. 은평교회 역시 가난했지만 그들에게 영의 양식이 되었죠. 저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기 때문에 우아하게 교회 반주나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궂은일이 늘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걸 금방 깨닫게 됐죠. 교회 청소와 주방 일 등 솔선할 일이 널려 있더라고요. 그렇게 섬기다 어느 시절부턴가 노숙인 등이 우리 교회가 베푸는 구호품을 타기 위해 예배 보는 것을 보고 세상 속으로 나가 모범을 보여 스스로 교회를 찾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박 단장은 자신의 음악 재능을 살려 플루트를 배웠고, 플립스 단원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던 피아노학원이 서울 공항동이었고, 집은 경기도 김포시였기에 부평아트센터를 중심으로 한 인천 지역 음악 봉사가 가능했던 것.
취미 활동 중심이었던 단원들이 사랑 나눔에 눈을 돌린 것은 박 단장이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 환우들을 위한 음악회를 주선하면서였다. 친정어머니를 포함, 혈액 투석을 위해 장시간 대기하던 환자와 그 보호자들을 클래식과 찬송가로 달래주자는 생각을 한 것.
“병원 원목실로 달려가 음악 봉사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병원 도, 단원들도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지원과 동참을 하겠다고 했어요. 변화한 건 그분들보다 오히려 우리예요. 공연 후 보육원 아이들과 복지시설 어르신들을 안으며 사랑을 배우죠. 단원들은 알아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사랑이 많다는 것을. ‘권사님, 저도 이제부터 교회 다녀요’ 하는 소리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죠. 실버 플루트앙상블을 꾸며 교회 전문 봉사를 하는 게 꿈입니다.”
인천=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미션&피플] 플립스 플루트오케스트라 박하실 단장 “위로가 필요한 곳 어디서든 연주합니다”
입력 2015-11-24 19:39 수정 2015-11-24 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