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號에 새 리더십을 묻다] ‘영웅’보다 ‘화합의 지도자’ 필요

입력 2015-11-23 22:06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를 찾아 조의를 표하고 있다. 왼쪽에는 상주(喪主)인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가 보인다. 서영희 기자

민주화의 문을 연 김영삼(YS)·김대중(DJ) 전 대통령이 6년의 시차를 두고 세상을 뜨면서 한국정치는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받고 있다. 이른바 ‘포스트 양김(兩金)’ 시대에 걸맞은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시절 양대 계파와 지역을 대표했던 ‘정치 영웅의 시대’에서 ‘사회 통합과 화합’이라는 시대정신을 꿰뚫는 현실 정치로의 전환을 말한다.

YS·DJ의 리더십은 엄혹했던 군부독재 시대의 반작용으로 등장했다. 물론 양김의 민주화 쟁취라는 과업을 누구도 부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민주화 이전의 ‘1인 중심, 계파 중심’ 리더십이 민주화 이후까지 지속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도 여야를 막론하고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간 대립 구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를 방증한다.

독재정권이라는 ‘공공의 적’을 상대로 싸우는 과정에서 필요악처럼 뿌리내린 지역주의와 계파정치의 병폐를 이제는 벗어나야 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3일 “권위주의 시대를 돌파하기 위해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를 중심으로 지역기반이나 파벌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그런 리더십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포스트 양김 시대에 걸맞은 리더십으로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이 우선 꼽힌다. 국론이 분열된 상황에서는 국정 어젠다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와 상관없이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다는 의미에서다. 특히 민주화를 쟁취한 YS·DJ 시대 이후에는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경제·사회적 불평등 문제 해결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청년층에서 ‘금수저·흙수저’나 ‘헬조선’이라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올 정도로 척박한 우리 사회 곳곳의 상처를 보듬어 안으려는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상을 빠르게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사회를 통합시키고 먹고사는 문제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경제 분야의 전문성뿐 아니라 복지 부문에 대한 확실한 방향성을 갖고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정치 투쟁’의 시대를 살았던 YS가 유언처럼 남긴 ‘통합과 화합’이라는 메시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가상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YS·DJ 시절에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를 겸했던 시절이지만 이제는 1인 중심의 리더십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설득의 리더십’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당장 리더십 변화를 통한 ‘정치 선진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김병준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정치는 정당이 집권하는 게 아니라 같은 정당 출신이라도 완전히 스타일이 제각각인 대통령이 집권하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정치 환경에선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임기 말 지지율이 떨어지고 리더십에 상처만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이유로 개헌 논의가 본격화돼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역주의나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개헌을 통해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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