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SBS·이하 마을)은 범죄 없는 마을 ‘아치아라’에 암매장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평화롭고 한적한 마을에 암매장 된 시체가 발견된다’는 설정에서 1990년대 미국 인기 드라마 ‘트윈픽스’(감독 데이비드 린치)와 닮았다. 그래서 ‘마을’은 ‘한국판 트윈픽스’로도 불린다.
‘마을’은 마니아를 양산하고 방송가 안팎에서 웰메이드 드라마로 호평받고 있다. 하지만 추리물 특성 때문에 시청률은 5%대로 저조하다. 낮은 시청률에 흔들릴 법도 한데 지난 19일 13회 방송까지 드라마는 초심을 잃지 않고 이어져왔다. 이용석 PD는 제작발표회에서 “‘마을’은 3무(無) 드라마다. 연기 못하는 배우, 쪽대본, 러브라인이 없다”고 했다.
◇“연기 못하는 배우가 없다”=사건을 풀어가는 인물은 3명이다. ‘외지인’ 문근영(한소윤 역)과 육성재(박우재 역), 마을을 오랫동안 떠나있던 김민재(한경사 역)다. 세 사람은 흩어져 있는 단서들을 끈기 있게 모은다.
비밀을 간직한 마을 사람들로는 신은경(윤지숙 역), 온주완(서기현 역), 장소연(강주희 역), 정성모(서창권 역), 박은석(남건우 역), 최재웅(아가씨 역), 장희진(김혜진 역) 등이 나온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이들도, 비밀을 감추려고만 하는 이들도 경중과 상관없이 드라마에서는 모두 주인공이다.
추리물은 누구 하나 연기를 못 하면 드라마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하지만 ‘마을’의 등장인물들은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두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죽은 자를 보는 아이 서유나 역의 안서현과 자폐를 앓는 바우 역의 최원홍 등 아역배우들도 빈틈없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문근영은 “배우들이 대본을 받을 때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음 촬영이 기대될 정도다. 쫄깃함이 있다. 끝까지 웰메이드 작품을 만들어 보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쪽대본이 없다”=‘마을’에는 서로 얽히고설킨 세 가지 사건이 함께 흘러간다. 암매장 사건, 연쇄 살인 사건, 19년 전과 30년 전의 성폭행 사건이 연결돼 있다. 기본적으로 추리물이지만 미스터리 요소가 가미됐다. ‘트윈픽스’처럼 초현실주의적인 장치는 덜하지만 그로테스크하고 섬뜩한 분위기가 줄곧 흐른다.
일관된 흐름을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쪽대본’이 없기 때문이다. 보통 16부작 드라마는 대본이 4∼5회 정도만 나와도 방송되는 일이 흔하다. 방송 3∼4일 전에야 대본이 나와서 배우들이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가 이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쪽대본’으로는 웰메이드 추리극을 만들 수 없다. 추리물 마니아들은 논리적인 전개와 개연성이 힘을 잃으면 금세 등을 돌린다. ‘마을’은 13회까지 대본이 나온 상태에서 드라마가 시작됐다. 기획 단계부터 계획했던 그림을 종영까지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장성욱 프로듀서는 “대본 하나하나에 공을 들였고, 미술이나 소품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쪽대본으로는 이렇게 공들여 준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러브라인이 없다”=지상파 드라마들은 보통 대중의 취향에 두루 적합한 작품을 선호한다. 시청률이 담보되지 않는 ‘모험’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설정, 러브라인 등은 반드시 필요한 장치다. ‘마을’에도 문근영, 온주완, 육성재 등 젊은 남녀가 나오지만 ‘범죄 해결하면서 연애하는 드라마’로 흐르지 않았다.
방송가에서는 SBS의 실험적인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한 케이블TV 관계자는 “SBS가 지상파인데도 파격적으로 장르 드라마를 내보낼 때가 있다. 자신감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방송가 관계자는 “시청률이 곧 성적표인 시대는 지났다. 웰메이드 드라마는 해외로 나갈 수도 있고, IPTV 등으로 시청이 가능하다”고 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3無 추리 드라마’ 마니아들 호평… ‘한국판 트윈픽스’로 불리는 SBS ‘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입력 2015-11-24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