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前 대통령 서거] 가장 우리네 대통령다운 대통령

입력 2015-11-23 21:57

22일 0시22분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세상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가장 첫 반응으로, 나에게 공감으로 다가온 것은 두 분의 언급이었다.

첫째는 ‘3김’의 한 사람으로 거론되던 김종필씨의 조용한 한마디. “좀 더 사실 줄 알았는데, 아쉽구먼”이라고 하던 한마디. 그리고 또 한 분은 일본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그이는 요즘의 가장 한국인 대통령다운 대통령이었는데…”라던.

우리나라의 가장 우리나라 대통령다운 대통령이었다고!? 이 한마디는 나로서도 조금 씹힐 맛이 있어 보인다.

가령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나 박정희, 김대중과 비교해 보더라도 YS는 그 인품에서나 체수에서나 단아하게 생긴 얼굴이나 심지어 목소리까지도, 어찌 보면 흔한 권위나 위압감이라곤 전혀 없는 소년처럼 보였다. 그래서 보통 시민들로서도 조금 만만해 보였다.

특히 북한 쪽 권력과 비교해 보더라도 그 위압감이나 우상화와는 가장 멀리 멀리 천리 바깥에 있는 것이 바로 우리네 YS 대통령이 아니었을까.

그러고 보면 언젠가 어디서 읽었던 기억 하나가 새삼 떠오른다.

한때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 통치 시절 총리 자리에 있었던 저우언라이(周恩來)와 덩샤오핑(鄧小平)을 부하로 다뤄봤던 모(毛)급의 모모 하나가 훨씬 세월이 지난 뒤에, 그 자기의 부하로 데리고 있었던 주(周)와 등(鄧)을 비교하면서 왈, “주(周)는 매사 자잘한 일도 구석구석 철저히 챙겨서 믿음직했는데, 등(鄧)은 아무리 큰일이라도 한 칼에 해치워서 시원시원하였다”라고. 이 일화를 YS의 평소 행태와 비겨보면 현 정치인 정대철씨 왈, 자기가 보기로는 DJ 쪽은 매사에 신중했는데, YS는 하는 일에 늘 거침이 없었다던 이야기도….

그러고 보면 그렇다. YS 집권 초기에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 실시와 군부의 오랜 암덩어리 ‘하나회’ 해체를 순식간에 이뤄내 명실공히 민주화의 가닥을 잡았던 일은, 그 매사에 소년 같았던 YS만이 해낼 수 있었던 거사가 아니었을까. 그런 일은 머리로 해내는 일이 아니라 그냥 느낌, 감각 같은 것으로 배짱으로만 가능한 일이었을 터이다.

언젠가 YS도 지나가는 한마디 지껄이듯이 머리는 남에게서 빌려오기도 하지만 건강은 자신이 챙겨야 한다고도 하더라는 것이다.

그 뒤 전두환, 노태우 등을 재판정에 피고로 세우고, 재판이 진행될 때(바로 불과 그 몇년 전에 불초 나라는 사람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연루돼 DJ와 함께 군사재판을 받았다), 즉 그때 그 장군들이 피고로 서 있었을 때 나는 어느 신문의 요청으로 두어 번 그 재판 방청기를 쓰기도 했었다.

다만 1995년인가, 김일성이 사망하지 않고, 그 몇 년 뒤에 DJ께서 뚫어냈던 남북 간의 그 일을 김일성 생전에 YS가 감당했더라면 혹여 YS 특유의 감각으로 파천황(破天荒)급의 그 어떤 길이 열려지지는 않았겠는지.

요컨대 그런 영역은 통틀어 나라 운세, 산천 운세 문제가 될 것이다.

그나저나 26일의 YS 출상이 지난 뒤에는 다시 2015년이라는 오늘의 우리 평상(平常)으로 응당 돌아올 터인데, 우선 오늘의 우리네 정치권부터가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면 멀쩡해 보이지만, 패거리 쪽으로 들여다보면 목불인견으로 꽉 막혀 보인다. 거개가 다음번 자신의 공천 문제에만 오로지 골몰해 있어 보인다.

이렇게 YS 서민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마당에 모처럼 온 국민이 YS와 DJ의 정치 역정을 돌이켜보며 우리네 민주화의 국면을 되다져보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지. ‘민주화의 거산’을 보내는 우리의 추도 방법은 모름지기 그래야 할 것이다.

이호철 (소설가·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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