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오는 26일 판문점에서 실무접촉을 갖는다. 의제와 수석대표의 격(格)이 합의되면 8년여 만에 장관급 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다. 남북은 지난 8월 북한의 지뢰 도발로 야기된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위급 회담을 열어 이른바 ‘8·25 합의’를 도출했었다. 합의 내용 중 추석 이산가족 상봉은 성사됐고, 다양한 분야의 민간교류 활성화도 겨레말사전 편찬을 위한 남북학자회의나 금강산 소나무재생방제 지원 사업 등 진전이 있었다.
하지만 당국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안에 개최키로 한 합의는 지켜지지 않다가 지난 주말 북측의 호응으로 성사된 것이다. 남측은 그동안 세 번이나 비공개로 예비 접촉을 제안했으나 북측이 외면했었다. 그런 만큼 실무접촉에서 장관급회담 정례화를 이뤄내 다음 단계의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남북은 2013년 6월 수석대표의 격 때문에 모처럼 합의했던 당국회담을 무산시켰던 적이 있다. 북측이 진정으로 대화 의지가 있다면 사실상 차관급인 내각 책임참사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노동당 비서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합의가 쉬운 의제들을 논의하면서 조금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최고지도자가 대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
김정은 체제 이후 더욱 고립됐던 북한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미묘한 움직임도 주목된다. 핵실험과 잦은 도발로 악화됐던 북·중 관계는 지난 달 류윈산 중국 상무위원의 방북 이후 점차 개선돼가는 분위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 논의도 진행 중이다. 장마당과 대외 교역이 늘어난다는 관측도 있다. 게다가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5개 당사국들은 북한이 회담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북한은 작금의 한반도 주변 정세를 잘 읽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수년 동안 지속돼온 남북 대립은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를 헤쳐 나가는데 남북 모두에게 심대한 걸림돌만 될 뿐이다. 안보와 경제 두 축을 중심으로 미국·중국·일본·러시아가 서로 협력과 대립을 정교하게 펼치며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데 남과 북만 소모적인 대립만 일삼고 있다면 한반도는 동아시아의 종속 변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사설] 남북, 장관급회담 정례화로 실질대화 이어가야
입력 2015-11-23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