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포스트 민주화·산업화’ 안착 절박하다

입력 2015-11-23 17:46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한창인 가운데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과 사진전 및 학술 심포지엄이 23일부터 이틀간 일정으로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우리나라 민주화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정 명예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더불어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거인들이 잇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그들의 유지(遺志)를 받드는 일이 살아 있는 이들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되돌아보면 그들의 통찰력과 지도력, 추진력은 탁월했다. ‘과연 가능할까’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시대에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뚝심으로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의 큰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군부정권의 종언에 이어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들을 밀어붙였고,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초고속 경제부흥을 일궈냈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비교적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건 시대를 관통하는 그들의 혜안(慧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015년 11월,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이념·지역·세대 갈등이 자주 표출되면서 국론은 양쪽으로 쪼개져 있고, 경제는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한 채 대내외 여건 악화로 휘청거리고 있다. 통합과 혁신을 위한 리더십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정치가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와 취임 초 ‘100% 대한민국’을 강조했으나 현재는 반대세력 포용을 거의 포기한 듯하다. 4대 개혁과 경제 살리기를 위해서도 통합은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은 대화합을 위한 통 큰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역시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여야 지도부가 국가적 현안 처리에 의기투합한 적이 없고, 걸핏하면 당리당략에 매몰돼 싸움질을 일삼고 있는 탓이다. 총선을 앞두고 여야 의원들은 계파별로 나뉘어 기득권 지키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렇듯 눈앞의 자잘한 정치에만 치중하고 있으니 ‘정치는 4류’라는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하겠다.

경제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많지는 않지만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 등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기업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처럼 창의적인 역발상으로 위기를 타개하고, 제2의 도약을 꾀하는 기업가 정신의 리더십을 볼 수 없어 아쉽다.

민주화·산업화 이후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아직 명확하지 않다. 다수 국민들이 공감할 만한 미래 비전이 없는 것이다. 정치권의 책임이 크다. 분열보다 통합의 정치, 포퓰리즘보다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는 정치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