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범현대가는 물론 일반 재계에서도 요즘 정 명예회장 ‘돌아보기’가 한창이다. 최근 기업인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선 정 명예회장의 ‘이봐, 해봤어?’가 우리나라 경영인을 대표하는 최고 어록으로 꼽히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불굴의 기업가 정신으로 존경받는 우리나라 대표 기업인이다. 특히 장기 경기침체 등 최근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그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사람이 더욱 많아지고 있다. 그의 어록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또 다른 말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혁신하면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기업인들에게도 “우선 행동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정 명예회장의 경영철학 어록 근간에는 ‘긍정의 힘’이 깔려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극복하라는 강한 메시지가 숨쉬고 있다.
최근 우리 경제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한미약품이다. 한미약품은 올해 5차례에 걸쳐 사노피, 얀센, 베링거인겔하임 등 세계적인 제약사를 상대로 총 계약 규모 7조원이 넘는 대형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 이관순 대표는 성공 비결로 ‘실패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도전하는 분위기’를 꼽았다. 이 대표는 지난 19일 서울 리츠칼튼호텔에서 열린 ‘한국 제약산업 공동 콘퍼런스(KPAC) 2015’ 개막 기자간담회에서 “(R&D는) 좋을 때보다 힘들 때가 많다”며 “최선을 다하되 실패할 때 책임을 묻지 않는 회사의 문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생각하는 창업주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의 경영 마인드도 대박을 터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임 회장은 연구과제의 실패에 대해 단 한 번도 문책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패할수록 오히려 연구·개발(R&D)에 과감히 투자하고 연구원들의 야근수당을 두둑이 챙겨주며 지속적인 연구를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상장 제약사가 발표한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올 들어 9월 말까지 한미약품의 매출액 대비 R&D 비율은 21.4%로 매출액 상위 20개 제약사 중 가장 높았다.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액 5698억원에 R&D 비용은 무려 1220억원이었다. 지난 15년간 누적 R&D 투자만 9000억원에 이르며 지난해에도 매출의 20% 이상인 1525억원을 쏟아부었다. 현재 한미약품은 연구인력만 489명이고, 연구인력 중에는 10년 이상 근무하고 있는 장기 인력이 상당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청년 사업가를 꿈꾸는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 MBA 학생들을 만나 “힘들어도 창업에 도전하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실패를 먹고살아야 성공한다”며 “스스로 실패를 이겨내고 도전을 더 크게 해야 변화 주도자(Change Maker)가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실패가 두려워 점점 스케일을 줄이면 결국 성공할 수 없으니 도전을 계속해야 하고, 실패 스토리가 쌓일수록 더 큰 성공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 단언했다.
고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은 “부끄러운 성공보다 좋은 실패를 택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 경제가 침체되자 상당수 기업인들은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눈치만 보고 있다. 자칫 투자했다가 실패할까 두려워 잔뜩 움츠려 있는 형국이다. 미래를 짊어지고 갈 젊은이들도 과감한 도전정신 없이 한발 빼며 소극적인 분위기다. 정 명예회장이 벌떡 일어나 “당신, 실패해봤어?”라고 호통을 칠 것 같다. 정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계기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과 창조혁신 정신이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오종석 산업부장 jsoh@kmib.co.kr
[돋을새김-오종석] 당신, 실패해 봤어?
입력 2015-11-23 17:48 수정 2015-11-23 1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