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상도동 시래기된장국

입력 2015-11-23 18:13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후보 및 당선자 시절 나는 상도동 출입기자였다. 1992년 5월 민주자유당 전당대회에서 후보로 선출된 뒤 그해 12월 선거에서 당선되고 이듬해 2월 취임할 때까지 상도동 자택은 정치부의 핵심 취재 대상이었다. 2층짜리 평범한 주택이지만 괴한에게 초산테러 습격을 받았고, 2년간 가택연금을 당했으며, 민주화를 위해 23일간 단식투쟁한 곳이어서 김 전 대통령에겐 고난의 정치역정이 스며 있다고 해야겠다.

1층은 응접실 겸 상황실, 2층은 부부 전용 공간, 지하는 식당으로 이용됐다. 제대로 취재하기 위해선 새벽 6시30분까지는 반드시 도착해야 했다. 근린공원으로 조깅하러 나가는 시간이기에 각종 현안에 대해 한두 가지라도 직접 물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여서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 한 시간가량 운동했다.

‘대도무문(大道無門)’ 액자가 걸린 응접실은 늘 붐볐다. 선대위 관계자와 비서진 외에도 눈도장 찍으러 찾아오는 정치인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자를 비롯한 방문객들에겐 시래기된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게 자그마한 낙(樂)이었다. 시래기된장국은 고향 거제도에서 보내온 최고급 멸치를 우려낸 국물로 끓여 최고의 맛을 자랑했다. 그는 가끔 지하에 내려와 “○○○ 기자 우리집 시래기국 맛있지? 한창땐데 한 그릇 더 하지 그래”라며 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취임을 위해 상도동을 떠나면서 “나한테 재산이라곤 이 집 한 채밖에 없다. 임기를 마치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지금의 이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와대에서 ‘칼국수 정치’를 하며 이 약속을 지켰다. 대선 공약이자 취임사에서 다짐한 부정부패 척결은 아들 등 측근 비리로 빛이 바랬지만 그걸 위해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밀어붙인 것은 큰 업적에 속한다. 시래기된장국을 먹을 때 당분간은 ‘분맹히’ 김 전 대통령 생각이 날 것 같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