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종인 <8> 지도교수 “영적 소명 찾아주는 재활 사역 해달라”

입력 2015-11-24 18:37 수정 2015-11-24 21:59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지도교수인 울프 박사(오른쪽)가 김종인 교수에게 박사학위 후드를 걸어주고 있다.

1996년 5월 8일은 내 생애 가장 감격적인 날이었다. 노던 콜로라도 컨벤션센터에서 박사학위 수여식을 마치니 유학생활을 도와준 감사한 분들이 모두 축하차 와 계셨다.

유학 내내 성경공부를 인도해 주신 송요준 장로님, 영어와 신앙의 표본이신 미국 아버지 딕네스씨, 주일날에 섬겼던 평강교회 김평덕 목사님 등 무려 40여분이나 와 주셨다. 이분들은 하나같이 한국에서의 장애인 사역을 당부했다.

“김 박사, 하나님께서 먼 이곳까지 보내 학위를 받게 하신 것은 한국 장애인들의 복지 향상과 영혼 구원을 위한 특별한 사명 때문임을 잊지 말게나.”

지도교수 울프 박사는 “존(John·종인의 약자)은 내가 41년 동안 지킨 강단을 떠나며 키운 한국 최초의 인간재활학 박사로 더없이 자랑스럽다”며 이렇게 말했다.

“인간재활학은 장애인을 인간적 측면으로 보는 것이 기본철학이네. 재활방향이 두 가지로 신체적, 정신적 재활에 영적인 재활까지 포함하는 전인적(Holistic) 재활이 있네. 또 다른 것은 의료적, 심리사회적, 교육적, 직업적 재활을 통합하는 통전적(Total) 재활이지. 이 중에서도 직업재활은 모든 생명체에는 소명적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것을 발견·발전시켜 주는 것인데 여기에 최선을 다해 주게나.”

울프 교수는 “결국 영적 소명을 찾아주는 것이 인간 재활의 핵심적 가치”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이날 나는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인간재활학을 공부하게 하셨는지 울프 교수를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학위 수여식날 밤, 11시가 넘어 숙소로 돌아온 나는 흥분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만감이 교차했는데, 갑자기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떠올랐다. 토플 성적도 없이 용감하게 유학 온 내가 박사학위와 미국 노인전문가 자격증을 동시에 받고, 학위수여도 조기에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어머니의 기도 때문이라는 깨달음이 온 것이다.

수시로 철야기도를 하시고 매일 새벽마다 기도하는 어머니의 기도에 응답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눈물로 꼬박 밤을 지새웠다. 어머니의 기도는 위대했고, 그 기도 덕분에 오늘을 맞이했음을 절절히 감사했다. 또 말리 홀트 여사에게도 고마웠다. 그저 한국 장애인복지 향상을 위해 직원도 아닌 나에게 유학의 길을 열어 준 것이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천안에 있는 나사렛대학에 나가야 했다. 유학 중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사렛대 재활선교학과에서 교수임용 면접을 보고 왔는데, 바로 임용이 됐음을 통보받은 것이다.

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 일에도 복귀한 나는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장애인 문제를 연구해 나가기 시작해야만 했다. 우리 연구원 사무실은 서울시청 앞 백남빌딩에 있었다. 난 유학가기 전 장애인들이 생존권 보장과 종합복지대책 수립을 요구하며 펼치는 시청 앞 시위를 매일 목격하곤 했었다.

특히 휠체어를 탄 중증 장애인이 리프트 고장으로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난 후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단연 이슈였다. 장애인신문, 장애인복지신문 등이 앞다투어 창간됐다. 이 신문들은 학보사 편집국장 출신인 나에게 재활상담과 칼럼 연재를 요청했었다.

나는 장애인의 애환과 삶의 처절한 고통을 매주 여론화시켰다. 이때 사회복지 정책을 학문적으로 배워 현실과 접목할 필요를 느껴 숭실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었던 것이다.

당시 어윤배(세문안교회 장로) 교수님을 지도교수로 모시고 지방자치시대에 장애인 복지 발전 방안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다. 어 교수님은 중소기업과 복지국가에 대해 탁월한 식견이 있는 분으로 내가 유학할 때 콜로라도에 직접 찾아와 기도와 격려를 해주셨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