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뷔작 ‘건축학개론’(2012)으로 ‘국민 첫사랑’이라는 별명을 얻은 걸그룹 미쓰에이 멤버 수지(본명 배수지·21)가 25일 개봉되는 ‘도리화가’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청순하고 예쁜 이미지가 아니라 소리꾼이 되기 위해 남장도 하고 고생깨나 하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영화 내내 가수와는 성량이 다른 판소리를 직접 해야 하는 부담감이 상당했을 법하다.
지난주 시사회 후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그가 판소리 영화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가수 출신이 과연 소리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우려도 없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서 찍었는데 극중 초반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더라고요. 소리가 제 몸에 착 달라붙지 않는 느낌이랄까. 갈수록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 안심이 됐어요.”
‘도리화가’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에 운명을 거슬러 소리꾼의 꿈을 실현한 조선 최초의 여류명창 진채선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수지는 “시나리오를 읽고선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며 “소리가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진채선의 애틋한 사연이 연습생 시절 가수를 준비하면서 느낀 제 감정과 비슷했다”고 털어놨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감정이입했는지 물었다. “부모님께서 제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싫어하셨어요. 거짓말을 하고 연습하러 나갔던 적도 있었죠. 가수가 되려고 춤 동아리에서 연습할 때도 잘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속상하고 포기하고 싶고 서러워서 연습실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도 했지요. 비슷한 상황인 진채선을 연기하면서 그런 기억이 스쳐 지나가더군요.”
조선 최고의 판소리 이론가 신재효(류승룡)의 제자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박애리 명창에게 1년 가까이 판소리를 배웠다. “판소리는 악보가 없어서 배울 때마다 느낌이 달랐어요. 돌아서면 금세 음을 잊어버렸죠. 수업 내용을 녹음해 계속 반복해서 들으면서 연습했어요. 이젠 흥얼거릴 정도로 판소리에 익숙해졌는데 영화에서도 그럴 듯하지 않았어요?”
득음하는 장면에서 10시간 넘게 살수차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비를 맞기도 하고, ‘심청가’의 인당수 대목에서 물속으로 수차례 뛰어들기도 했다. “여러 번 감기에 걸려 고생했어요. 폭우 속에서 악에 받쳐 계속 소리 지르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목도 많이 상했고요. 추운 날씨에 입수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발목이 잘리는 줄 알았어요(웃음).”
판소리를 통해 한(恨)의 미학을 영상에 옮긴 ‘서편제’(1993)와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에 수지는 “분명히 다른 성격의 상업영화”라고 구분했다. “판소리 자체가 중요하기는 하죠. 그래서 제 나름의 창법으로 소리를 했지만 한계는 있다고 봐요. 판소리를 정확하게 들려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파란만장한 진채선의 삶을 오롯이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흥선대원군(김남길)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회루에서 낙성연 경연을 하는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처음으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춘향가’의 쑥대머리를 부르는데 자꾸 눈물이 나더라고요. 슬프고 애잔한 감정이 북받쳐 오른 거죠. 이후 가마를 타고 궁궐로 들어가면서 스승과 잠깐 이별을 나누는 대목에서도 설움에 어쩌지 못하는데 정말 슬픈 영화 같아요.”
이번 영화를 통해 얻고 싶은 별명이 있는지 질문했다. “‘국민 소리꾼’은 너무 거창하고 ‘국민 남장’ 정도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지어주시겠죠.” 가수 활동보다 연기에 전념할 생각은 없을까. “아직은 두 가지를 모두 다 하고 싶어요. 언젠가 바뀔 수도 있겠죠. 어떤 게 더 좋으냐고 묻는 것은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와 같은 질문이에요.”
도리화가(桃李花歌)는
신재효가 제자 진채선의 아름다움을 복숭아꽃과 자두꽃이 핀 봄 경치에 빗대 지은 단가(짧은 판소리)다. '최종병기 활' '광해, 왕이 된 남자' '명량' 등 사극 흥행 배우 류승룡이 신재효 역을 맡아 수지와 호흡을 맞췄다.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눈밭 장면 등 전국을 누비며 촬영한 풍경이 아름답다. '전국노래자랑'의 이종필 감독. 12세 관람가. 109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인터뷰]‘도리화가’서 소리꾼 변신한 ‘국민 첫사랑’ 수지… “제 판소리 그럴 듯하지 않았어요?”
입력 2015-11-24 18:58 수정 2015-11-24 2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