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은커녕 일자리까지 잃은 비정규직 여직원

입력 2015-11-23 04:05

‘정규직 전환’을 둘러싼 서글픈 먹이사슬이었다. 비정규직 여직원이 정규직 남성 직원의 비위를 맞추려고 동료 비정규직 여직원에게 성희롱 발언을 했다가 정규직이 되기는커녕 일자리마저 잃었다. 억울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A씨(여)는 2009년 서울대공원에서 매표 업무를 맡는 용역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3년 뒤 2012년 12월 서울시는 ‘2차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개선책’을 발표했다. 발표 시점 전부터 일해 온 비정규직 근로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고용을 이어가기로 했다. A씨와 같은 용역직원도 ‘공무직’(정규직)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정규직원과 비정규 용역직원이 함께 모인 직원 워크숍에서 사달이 났다. A씨는 공원 운영을 담당하는 남성 팀장에게 “결혼하셔야지요”라며 같은 용역업체 소속 여직원 B씨가 어떠냐고 물었다. 이어 B씨에게는 “팀장님이랑 같은 방 쓰면 되겠네. 오늘이 첫날밤인가. 2세도 보는 건가”라고 했다. 또 다른 용역업체 소속 여직원에겐 “팀장이 너 예쁘다고 같이 사진 찍고 싶어 한다”며 함께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A씨의 이런 행동은 남성 정규직원의 ‘비위’를 맞춰준 거였다. 워크숍 회식 자리에선 정규직 남성들이 용역업체 여직원의 어깨·허리를 감싸며 성추행을 했다. 한 직원은 술을 따라주는 여직원에게 “이렇게 술을 따라주면 역사가 이뤄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자리에 있던 여직원들은 이를 서울시 인권센터에 신고했고, 조사 과정에서 A씨의 성희롱 발언도 드러났다. 서울대공원은 지난 2월 매·수표 용역직원 25명을 준공무원으로 전환했지만 A씨는 제외했다. 용역 계약도 연장하지 않았다.

A씨는 “설사 성희롱 행위가 인정되더라도 준공무원 전환을 배제할 ‘특별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차행전)는 A씨가 서울시를 상대로 낸 준공무원 지위 확인 청구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2일 밝혔다. 재판부는 “준공무직으로 전환되려면 공무원에 준하는 품성과 품위가 요구된다”며 “A씨의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하고 이를 특별한 사유로 본 심사 결과는 적법했다”고 판시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