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모규엽] ‘늙은 과부와 하녀’

입력 2015-11-22 17:51

이솝우화의 ‘늙은 과부와 하녀’에 나오는 이야기다. 옛날에 한 과부가 두 명의 하녀를 데리고 있었다. 수전노인 이 늙은 과부는 키우던 닭이 새벽에 울면 하녀들을 깨워 일을 시켰다.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해야 하는 하녀들의 불만은 커졌다. 근데 덩달아 새벽에 우는 닭이 매우 야속하게 느껴졌다.

더 나아가 자기들의 고생은 모두 새벽에 과부의 잠을 깨우는 저 닭 때문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결국 닭이 없다면 과부가 늦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하녀들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자고 결정하고 그대로 실행했다. 과부가 물으면 족제비가 물어 갔다고 입을 맞추고 닭을 죽였다.

그런데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깨워주는 닭이 없어진 과부는 새벽에 깨지 못할까 불안감에 사로잡혔고, 오히려 늘 시간을 잘못 짚어 하녀들을 한밤중에 깨워 일을 시켰다. 이 우화는 근본적인 대책 없이 얕은꾀로 한 고비를 넘기면 더 어려운 일이 닥쳐올 때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교훈을 준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써야 한다는 뜻이다. 또 지나친 계획은 도리어 실패한다는 점도 깨닫게 해준다.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생전에 수많은 어록을 남겼다. 그중 백미(白眉)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신민당 총재 시절이던 1979년 미국 뉴욕타임스 인터뷰 때 한 발언을 빌미로 유신 정권에 의해 의원직을 제명당했다. 이때 김 전 대통령은 이솝우화의 ‘늙은 과부와 하녀’를 인용해 이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그리고 그 말에 이어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지 않고 잠시 죽는 것 같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할 것”이라는 명언도 함께 남겼다.

아무리 서슬 퍼런 독재 정권의 탄압이 거세도 민주화는 온다는 의미다. 직선적이고 투박한 이 어록은 독재에 숨죽여 민주화를 갈망하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희망을 줬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한다.

모규엽 차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