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공과(功過)는 뚜렷하게 갈린다.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도입 등 굵직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불러온 개혁을 이끌었지만, 임기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초래해 국민적 비난을 사기도 했다. 최대 오점은 차남 현철씨 등 친인척들의 비리였다.
◇문민시대를 연 개혁 대통령=32년간 이어졌던 군사정권을 종식시키고 ‘문민정부’ 간판을 내건 YS는 임기 초반 지지율이 90%에 육박했다. 취임하자마자 부정부패 고위 공직자들을 줄줄이 구속시키고, 군부 사조직 하나회를 과감하게 척결하는 걸 보고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런 강력한 국민적 지지를 동력삼아 YS는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선다. 교과서에 군사혁명으로 기술된 5·16 군사정변을 정식으로 ‘쿠데타’라고 고쳤다. 일제침략의 상징인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하고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개칭했으며, 전국 곳곳에 일제가 박았던 쇠말뚝을 뽑아 과거사 청산에 의욕적으로 앞장섰다.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보고도 없앤 데 이어 임기 후반에는 5·18광주학살과 12·12군사반란, 비자금 축재 책임을 물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 수감시켰다.
정치적으로는 지방자치제도를 확대·시행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외교·안보 정책은 오락가락했다. 1994년 6월 미국 정부가 북한 핵 시설 공습을 계획하면서 한반도가 전쟁위기로 치닫자, 김일성 북한 주석과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다. 그러나 성사 직전 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남북정상회담은 취소됐다. 일본을 향해서는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강경발언을 하기도 했다. 경제수역 경계 문제 때문에 한국 어선이 나포되는 등 한·일 긴장이 고조되자 일본이 제시한 잠정공동수역안을 받아들여 독도영유권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명암(明暗) 엇갈린 경제정책=가명과 차명을 쓴 금융거래가 각종 비리의 원인이라고 판단한 YS는 부패 차단과 과세 형평성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취임 첫해 ‘대통령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 발동을 통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시행한 게 대표적이다. YS는 당시 담화문에서 “금융실명제를 실시하지 않고는 이 땅의 부정부패를 원천 봉쇄할 수 없고, 정치와 경제의 검은 유착을 근원적으로 단절할 수 없다”고 했다.
1996년 12월엔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 민주화를 달성한 국민들에게 또 다른 자신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OECD 가입은 불과 1년 만에 부메랑으로 다가왔다. ‘세계화’라는 구호만 내걸었지 준비가 부족했던 대외개방은 1997년 유례없는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1997년 1월 재계 14위인 한보그룹의 부도를 시작으로 대기업 부도가 이어졌다.
그해 1년 동안 부도를 낸 대기업의 금융권 여신만 30조원이 훌쩍 넘어서면서 신용 경색과 금융시장 혼란은 대한민국 전체를 금융위기로 몰아갔다. 해외 금융기관의 부채상환 요구에 외환보유액이 바닥 나자 김영삼정부는 1997년 11월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 모라토리엄(대외채무 지불유예) 선언을 가까스로 면했다.
◇최대 오점은 측근·친인척 비리=YS 지지율은 임기 막판 10%를 밑돌았다. ‘소통령’이라 불린 차남 현철씨와 홍인길 전 청와대 수석 등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사건이 터진 게 결정타였다. ‘국정농단’ 혐의를 받던 현철씨가 체포되자 YS는 대국민 사과 성명까지 발표해야 했다.
1996년 노동법과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법을 ‘날치기’ 통과시키고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안풍’사건도 YS의 과오로 남아 있다. 김대중정부 시절 대법원은 “피고인 김기섭(안기부 기조실장)이 선거자금 등으로 지원한 1197억원은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 피고인이 은밀히 관리하던 김 전 대통령과 관련된 정치자금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결했다.
2011년 미국의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는 YS에 대한 미국 대사관의 평가를 공개했다. 이 문서에서는 YS를 “다혈질 성격과 보수적 정치이념을 갖고 있으며, 정책현안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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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22 2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