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6시50분쯤 서울 동대문구 한 도로에서 화물차가 이모(68·여)씨를 치었다. 화물차는 시속 30㎞ 정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리 빠른 것도 아닌데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해진 탓에 왕복 4차로를 무단횡단하던 이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바로 병원에 옮겼지만 5시간여 만에 숨을 거뒀다.
노인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계절이 왔다. 겨울만 되면 길을 가다 차에 치어 숨지는 노인이 급증한다. 노인 교통사망사고는 일반적인 사망사고와 달리 대부분 보행 중에 발생하고, 낮이 짧아지는 늦가을과 겨울(10∼1월)에 집중된다. 새벽시간대에 많이 발생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인 136명 가운데 100명이 보행자였다고 22일 밝혔다. 10명 중 7명꼴이다. 보행자가 많은 이유는 사망 원인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1∼10월 보행 중 교통사고로 숨진 노인 76명(전체 교통사고 사망 노인은 105명) 가운데 29명은 차로를 무단횡단하다 변을 당했다. 횡단보도를 빨간불에 건너던 경우까지 포함하면 57.9%가 ‘무단횡단’으로 목숨을 잃었다. ‘보행 부주의’를 합치면 65%에 육박한다.
택시 운전자 김모(52)씨는 “노인들은 보행신호가 바뀌어도 앞만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경우가 많다. 아예 도로를 가로지르는 일도 다반사”라며 “조심해서 운전하지만 위험천만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월별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는 11월이 17명으로 가장 많았다. 전체의 12.5%에 이른다. 이어 1월(15명) 10월(14명) 12월(14명) 순이었다. 이 시기는 낮이 짧아지면서 해가 늦게 뜨고 금세 지는 때다. 주변이 어둑한 시간에는 운전자가 무단횡단 보행자를 재빨리 발견하기 어렵다.
특히 과속차량이 많은 새벽시간대는 사고 위험이 높다. 폐지를 모으는 등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인 상당수가 이 시간대에 움직인다. 이런 특징은 시간별 사망자 통계와 일치한다. 지난해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는 오전 6∼8시에 25명으로 가장 많았고, 오전 4∼6시가 18명으로 뒤를 이었다.
예방할 방법은 없을까. 경찰은 단속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경찰 관계자는 “많은 경우 교통법규를 위반했다고 단속을 하려 해도 ‘뭐, 이런 걸 갖고 그러느냐’며 그냥 가려 하곤 한다”며 “신분증을 요구해도 없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 단속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무단횡단 방지 펜스 등 시설물을 설치하고 있다. 눈에 잘 띄게 형광조끼, 안전지팡이(반사판이 붙어 있는 지팡이)도 나눠준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무단횡단이 치명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노인정이나 경로당을 찾아 맞춤교육을 하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고 말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기획] 노인 교통사고, 겨울철 급증… 늦가을·겨울 무단횡단 더 위험
입력 2015-11-23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