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총통 선거를 앞둔 대만 정가가 어수선하다. 집권 국민당과 민진당의 공방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특히 지난 11월 7일 시진핑과 마잉주의 전격 회동은 대선 정국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국민당 살리기’라는 평까지 받았던 양안 정상의 만남에도 불구하고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가 국민당 주리룬(朱利倫) 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다. 현재로선 중국의 국민당 지원 전략이 별 효과가 없어 보인다. 역풍 기미마저 나타난다. 시진핑이 고민하는 이유다.
한편 대만 대선에는 아주 중요한 변수가 숨어 있다. 바로 미국 요인이다. 각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미국의 선호도가 대만 여론에 민감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서로가 미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국은 대만 대선에서 국민당 후보를 지지해 왔다. 이는 국민당을 특별히 선호해서라기보다는 대만해협의 풍파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은 민진당의 집권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도 미국은 마잉주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이번 대만 총통 선거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여지없이 발휘될 것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의 선택이 과거와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차이잉원 후보가 과거의 민진당 후보들과 다르다. 국민당 후보는 친미, 현상유지를 원하는 반면 민진당 후보는 반미, 독립을 추구한다는 기존의 구분도 모호해졌다. 차이 후보는 미국에서 유학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천수이볜(陳水扁)처럼 무턱대고 대만 독립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둘째, 차이 후보의 지지도가 월등하게 높아서 국민당 후보가 이를 추격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따라서 미국은 섣불리 국민당 후보를 지지했다가 낭패를 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셋째, 미국은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통한 양안의 현상유지 차원에서 대만의 독립 주장 세력을 멀리해 왔으나 최근 대중국 견제 차원에서 대만 문제 전반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즉 미국은 남중국해 영토분규 등 중국의 대외 공세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양안의 긴장 수준을 적절히 높여 대만 카드를 활용하고자 한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대전략 속에서 독립 성향의 민진당 후보는 더 이상 문제아가 아니며 오히려 조력자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대만 총통 선거는 민진당의 압도적 우세 속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 역시 민진당의 집권이 불가피한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는 것 같다. 시진핑이 마잉주를 급히 만난 것도 상황을 역전시키려는 의도보다 얼마 남지 않은 국민당 집권기에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을 못 박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중국과 국민당은 미국이 과거와 달리 대만 대선 과정에서 중국 견제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며칠 전 주한 대만대표부 스딩(石定) 대표에게 대만 대선에 대한 미국의 전략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물었다. 그는 미국이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일관되게 국민당을 지지해 왔던 미국이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민진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양안관계에서 적당한 긴장을 야기할 문제아 탄생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대만해협에서 구사하는 고도의 전략적 판단과 속셈이 우리에겐 왠지 남의 일 같지 않다. 주리룬 국민당 후보가 미국의 지지를 얻어보려고 워싱턴 정가를 기웃거리는 모습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
[한반도포커스-문흥호] 대만 총통 선거와 미국의 선택
입력 2015-11-22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