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미술관 ‘리움’의 힘을 느껴보세요… 소장품 대거 소환 첫 전통 건축전

입력 2015-11-29 17:47
배병우 작가가 찍은 창덕궁 사진(왼쪽)과 19세기 초반에 그려진 경기감영도 병풍의 부분. 동시대 작품과 유물을 함께 진열함으로써 건축이야말로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호흡하는 예술임을 드러낸다. 리움 제공

18세기에 그려진 경기감영도 병풍. 종을 앞세우고 말을 타고 가는 양반, 나리 행차에 줄줄이 엎드린 백성들, 광주리를 이고 작은 다리를 건너는 아낙네들…. 관아 주변 거리를 오가는 관민들의 일상생활 모습이 생생해 도시 풍속화를 보는 듯하다. 주명덕, 배병우, 구본창, 김도균 등 현대 사진작가들이 찍은 전통 건축 사진과 함께 선보이는 옛 그림이다. 건축과 그림의 만남이 의외의 생기를 불어넣는다. 건축이야말로 그 안에서 살았던 세대와 세대를 연결시키며 수백 년을 면면히 이어오는 시간예술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삼성문화재단 창립 50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이 마련한 ‘한국건축예찬-땅의 깨달음’전에선 리움의 힘이 느껴진다. 건축전은 통상 밋밋한 사진 위주라 잘하기가 쉽지 않다. 모형, 영상, 설치 등으로 평면이 주는 단조로움을 깬 것도 눈길을 끌지만 이렇듯 유물들이 같이 전시돼 중층적인 시간성을 보여준 것이 큰 매력이다.

K팝이나 드라마만 내세울 일이 아니다. 동양 철학과 가치, 장인 정신이 집대성된 1000년 한국 전통 건축이야말로 세계에 뻗어가야 할 한류다. 전시는 전통 건축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국내외에 적극 알리고자 기획됐다. 종묘, 창덕궁, 수원화성, 도산서원, 소쇄원, 양동마을, 해인사, 불국사, 통도사, 선암사 등 간판급 건축물 10곳이 선정됐다.

전시공간은 하늘·땅·사람의 삼부작으로 나뉜다. 사찰과 종묘, 궁궐을 통해 ‘침묵과 장엄의 세계’, 궁궐건축과 성곽, 관아건축으로는 ‘터의 경영, 질서의 세계’, 서원과 정원, 민가를 엮어 ‘삶과 어울림의 공간’을 각각 보여준다. 리움에서 전통 건축전은 처음이다. 2년간 준비하는 등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사진과 전통 유물 뿐 아니라 시적인 영상, 실물을 보는 듯한 모형 등 다양한 입체적 자료 덕분에 융·복합적인 전시가 됐다.

주명덕이 찍은 눈 내린 겨울 종묘의 정경에는 엄숙함이 있다. 범접할 수 없을 듯한 공간에 사람 냄새를 입힌 것은 박종우 감독이 2년에 걸쳐 촬영한 3채널 영상이다. 꽃잎이 분분하고, 소나기가 내리는 종묘의 사계절은 후각과 청각을 자극한다. 배병우가 찍은 눈 내린 창덕궁의 정경에는 선의 미학이 있다.

1890년대 경복궁과 육조거리를 재현한 모형은 마치 드론으로 당시를 내려다보는 기분을 준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의 작품으로 전통 한옥구조를 재해석한 ‘유첨당’도 흥미롭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성도, 한성능행도병(보물 1430호), 경기감영도 병풍(보물 1394호), 고려시대 당간인 용두보당(국보 136호) 등 리움 소장품이 대거 소환됐다. 동궐도(국보 249-2호), 동국대지도(보물 1538호)등 타기관 유물도 어렵게 빌려왔다.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이 소장한 여러 관아를 그린 화첩 ‘숙천제아도’는 첫 한국 나들이다. 내년 2월 6일까지. 청소년에게는 평일 무료 개방된다. 일반 5000원, 청소년(주말) 3000원(02-2014-6901).

손영옥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