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우리나라는 세계무역기구(WTO)에 관세율 513%를 설정하고 쌀 관세화를 통보했다. 정부는 WTO에 제출한 양허표수정안에서 소비자 시판용 쌀(이하 ‘밥쌀용 쌀’)을 의무적으로 30% 수입하던 조건 등을 삭제했다. 이에 대해 미국 등 5개국이 이의를 제기했다.
주식으로서 쌀이 갖는 상징성, 농가소득에 미치는 영향 등을 감안할 때 관세화 과정에서 관세율, 밥쌀용 쌀 수입금지 등의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2013년부터 농업인단체·학연전문가·정부 등이 참여하는 ‘쌀산업발전포럼’은 관세화를 시행할 경우 예상되는 이해당사국과의 쟁점에 대해 토론을 벌여 상호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부에서도 이를 반영해 왔다. ‘밥쌀용 쌀 30% 의무수입’ 조항을 삭제한 것은 밥쌀용 쌀을 전혀 수입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국내 수요와 관계없이 무조건 30% 수입해야 하는 의무를 없애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일부 농민단체 및 전문가를 중심으로 밥쌀용 쌀 의무수입 조항을 삭제했으므로 밥쌀용 쌀 수입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에 제기되고 있다. 주장의 핵심은 MMA(우리나라가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 2014년 기준 40만9000t) 물량을 밥쌀용이 아니라 전량 가공용으로만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MMA 물량은 농산물 수입국의 민감성을 반영한 제도이므로 내국민 대우 등 WTO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며, 2014년 WTO에 통보한 우리나라 양허표수정안에서 밥쌀용 규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내 통상법학자들은 MMA 물량에 WTO 원칙의 예외가 적용된다는 어떠한 규정도 없기 때문에 ‘예외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허표수정안에 밥쌀용 규정이 빠져 있다고 해도 WTO의 일반원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내국민 대우원칙 등 WTO 일반원칙을 준수하는 것은 양허표 명시 여부와 상관없이 WTO 회원국의 의무사항이다. 일부 농민단체와 법률 전문가는 WTO 법률을 최대한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면서 WTO 분쟁으로 비화되더라도 최종 판결까지는 가공용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통상 관련 규범을 무리하게 해석하고 이를 정부가 실행에 옮길 경우 WTO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크며, 이로 인해 WTO 패널 등에서 우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수입쌀 혹은 다른 부문으로 정책이 결정될 수 있다.
2002년에 쌀 관세화를 단행한 대만의 사례는 타산지석이다. 대만은 관세화하면서 여러 부대조건을 삭제해 WTO에 통보했다. 그러나 4년9개월에 걸친 검증 과정에서 밥쌀용 쌀의 사용을 저해하지 않게 적절한 방식으로 판매, 수입쌀과 국산쌀의 동등한 대우, 수입쌀의 식량 원조와 사료용 사용 금지 등 부대조건 문구가 부활되고 미국을 포함한 4개국의 국가별 쿼터 물량이 추가로 신설되었다. 20년 동안 미뤄왔던 쌀 관세화의 마지막 관문은 회원국들의 검증을 통과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전략은 관세율이 WTO 규정에 따라 산출되었고, MMA 쌀도 내국민 대우 등 WTO 원칙에 맞게 운영한다는 것을 이의제기한 5개국에 각인시키는 것이다. 이미 형성한 공감대를 재확인하고 결집해 우리가 제출한 관세화 양허안이 문제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힘을 모을 때다.
서종석 전남대 농경제학 교수
[기고-서종석] ‘쌀 관세화’ 잘 마무리되려면
입력 2015-11-20 1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