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MBC에서 방송되는 노래 대결 프로그램 ‘복면가왕’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인기비결은 오로지 노래 실력으로만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프로그램 방식에 있다. 모든 출연자들이 복면을 쓰고 등장해 심사위원들은 이들이 누구인지 몰라 편견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복면의 긍정적 측면이다.
복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분을 감추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때론 악의 화신으로, 때론 영웅으로 복면의 변화는 무쌍하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처럼 악인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각시탈’ ‘배트맨’ ‘쾌걸 조로’ 등 영화나 작품에서 악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로 그려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복면은 권력에 맞서는 수단이기도 했다. 조선 양반사회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풍자한 하회탈춤이 그렇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난 2006년 개봉한 나탈리 포트만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 등장한 가이 포크스(1604년 영국 왕 제임스 1세 암살을 시도했던 주동자) 가면은 2011년 월가 시위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이 쓰면서 불의에 맞서는 저항의 아이콘이 됐다. 이 같은 복면시위는 1989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이듬해 스위스로 확대됐고, 유럽 전역으로 전파됐다. 복면을 쓰면 익명성이 보장돼 과격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들은 복면시위를 할 경우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두고 있다.
새누리당이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과격시위를 계기로 집회나 시위 때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도입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복면금지법은 17, 18대 국회에서도 추진됐으나 인권침해 논란 속에 법제화되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시대착오적 악법”이라고 반대하고 있어 이번에도 법제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복면영웅들이 활약하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 각시탈, 배트맨, 조로가 활약한 시간적·공간적 배경은 하나같이 암울하다. 복면시위를 처벌하기에 앞서 복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먼저 아닐까 싶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한마당-이흥우] 복면
입력 2015-11-20 1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