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평형수 관리협약이란] 중심 잡으려 물 채웠더니… 魚! 덩달아 들어온 넌 누구니?

입력 2015-11-20 21:05 수정 2015-11-20 21:15
얼룩무늬담치, 유럽녹게, 북태평양불가사리, 참게, 망둑어. 선박 평형수에 유입되는 대표적 해양 생물들이다. 이 같은 어패류와 함께 아시아다시마(왼쪽)와 북아메리카해파리(오른쪽)도 자주 발견된다.해양수산부 제공


선박 평형수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국제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바다의 국제연합(유엔)’이라고 불리는 국제해사기구(IMO)가 문제 해결에 나섰다. 평형수에 들어온 생물이 살아 있는 채로 나갈 수 없도록 하는 처리 시설을 선박에 설치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IMO가 평형수 무단 배출을 막는 협약을 채택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해운 강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아직도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국내 기업들이 선박 평형수 처리 기술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얼른 IMO 협약이 발효되기를 바라고 있다.

◇2004년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 채택=평형수를 통한 해양 생물의 이동이 국제적인 환경 문제로 떠오르자 2004년 IMO가 나섰다. IMO는 해운에 영향을 미치는 해사 기술과 법률의 국제적 통일을 위한 유엔의 전문 기구 중 하나다. IMO의 환경보호위원회는 2004년 2월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은 IMO에 가입된 모든 국가가 자국 선박에 평형수 처리 장치를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는 간단히 말해 평형수 탱크에 들어온 해양 생물을 죽이는 장치로, ‘선박 정수기’라고 보면 된다. 협약에는 처리 시설을 통해 크기가 50㎛ 이상인 생물의 경우 평형수 ㎥당 10개체 미만, 10㎛ 이상 50㎛ 미만인 경우 평형수 ㎖당 10개체 미만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크게 전기분해, 자외선 살균, 오존 살균, 화학처리 등 4개의 처리 기술이 사용된다. 생물 잔류 기준이 과거보다 엄격해져 화학처리 기술이 더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협약은 발효되지 않은 상태다. IMO는 협약 발효 조건으로 30개국 이상이 협약을 비준해야 하고, 이 국가들이 보유한 선박의 적재능력(선복량) 합이 전 세계 선복량의 35% 이상 돼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 조건에 충족하는 시점으로부터 12개월 뒤에 협약이 발효된다. 현재 협약 비준국은 44개국으로 30개국을 훨씬 넘는다. 한국도 비준국 중 하나다. 하지만 선박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들이 비준하지 않아 선복량이 32.86%로 협약 발효 조건에 살짝 미달하고 있다.

선박 무역 강국으로 꼽히는 중국 싱가포르 홍콩 파나마 바하마 등은 아직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이들 국가의 선복량은 각각 3∼7% 정도 된다. 한 국가만 비준해도 협약이 12개월 후에 발효될 수 있지만 이들 국가는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비준을 미루고 있다. 이들 국가의 대표적 고민은 선박 평형수 처리 시설 설치 비용이다. 아직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나라들은 선박 강국이긴 하지만 평형수 처리 시설 기술은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IMO가 평형수 처리 시설을 공식적으로 37개만 인증하고, 이 제품만 이용하도록 하고 있어 평형수 처리 시설을 만들 기술이 없는 나라는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비용 상승으로 해운 업계가 갑작스레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해운 강국은 섣불리 비준하기 힘든 것이다.

한국정부는 올해 안에 선복량이 큰 국가 중 한 국가 정도는 협약 비준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12개월 뒤인 내년 말 협약이 발효되고 전 세계 선박들은 평형수 처리 시설을 해야 한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20일 “우리 정부는 2007년에 이미 선박 평형수 관리법을 제정하고 대비해 왔다”며 “협약이 발효돼도 한국 선박들의 부담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형수 처리 기술 3분의 1 보유한 한국=한국정부는 오히려 IMO의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이 조속히 발효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쪽이다. 한국 기업들이 평형수 처리 기술에서 단연 앞서 있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IMO의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 발효 조건이 충족되고 내년 하반기에는 협약이 발효될 경우 해수부 추산으로 전 세계 5만7000여척의 선박이 의무적으로 평형수 처리 설비를 해야 한다. 정부는 이 선박이 모두 평형수 처리 설비를 하게 되면 관련 시장 규모가 4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800억 달러(93조원)대 시장이 형성될 것이란 영국 해양공학연구소의 전망도 있다. 미국은 2012년 6월 IMO 협약 발효에 앞서 자국의 항구에 입항하는 선박은 평형수 처리 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효하기도 해 관련 시장이 이미 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협약 발효를 한국 기업들의 새로운 시장 창출 기회로 여기고 있다. 정부는 IMO의 선박 평형수 관리 협약 채택이 확실하다고 보고 이미 2003년부터 대응방안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전체 기술 중 35%인 13개 기술을 한국이 보유하고 있다. 현재 IMO가 최종 승인한 평형수 처리 설비 기술은 전체 37개인데, 협약이 발효되면 전 세계의 선박은 이 기술을 이용한 설비만 설치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 테크로스, 엔케이, 이엠코리아, 파나시아 등이 선박 평형수 처리 시스템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이미 한국 평형수 처리 설비 수주액은 2010∼2014년 누적 집계로 1조4425억원에 달한다. 전 세계 수주액의 55%로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선점했다. 일본, 독일 기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정부는 한국 기업이 시장점유율 1위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추진 과제 중 하나로 평형수 처리 설비산업 육성을 선정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선박 평형수 처리 장치를 환경과 기술 융합을 통해 규제를 위기로 바꾸는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평형수 처리 시설 분야가 박근혜정부 상징인 창조경제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정부는 4년 동안 평형수 처리 설비 기술 연구·개발(R&D) 예산으로 12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밝혔고, 세계 주요 해운국과 선박 회사를 대상으로 전시회 등 민관 합동 마케팅을 실시했다. 지난해 9월에는 선박 평형수 관리법을 개정하면서 국내 기업의 평형수 처리 설비 형식 승인 등을 위한 법적 제도를 마무리했다.

세종=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