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 전 한국 의사 가르쳤던 미국… “한국의 첨단 의료기술 전수해달라” 요청

입력 2015-11-20 04:03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의료원장(앞줄 왼쪽 끝)이 베트남 의료진의 생체 간이식 수술을 지도하고 있다. 이 병원은 몽골 베트남 등의 의료진에게 선진 의료기술을 교육하는 ‘제2의 미네소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제공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 ‘의료’는 낯선 단어였다. 잿더미에서 제대로 틀을 갖춘 병원이나 의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이런 한국을 위해 미국은 1955∼66년 의료 선진화를 위한 무상원조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이를 ‘미네소타 프로젝트’라고 불렸다.

11년간 서울대 의대 소속 의사 60여명과 간호사 등 77명이 미국 미네소타 의대에서 짧게는 3개월, 길게는 4년간 머물며 선진 의료기술을 배웠다.

그때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20, 30대 젊은 의사들은 우리나라 의료 발전을 이끌었다. 국내 소아심장 분야 개척자인 홍창의 전 서울대병원장, ‘바이러스 박사’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 등이 바로 미네소타 프로젝트의 주역들이다.

그리고 60여년의 시간이 흘러 ‘보은(報恩)의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한국 의사·간호사를 가르쳤던 미네소타 의대가 거꾸로 한국의 첨단 의료기술을 배우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서울아산병원은 20일 미네소타 의대·대학병원과 장기이식 및 줄기세포 공동 연구를 위한 협약을 체결한다. 병원은 내년부터 미네소타 의대 의료진에게 20년간 쌓아온 생체 간이식 경험과 기술을 전수한다. 또 미네소타 의대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줄기세포 기술을 아산병원의 장기이식 노하우에 접목해 인공장기 개발, 조직재생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번 협약은 미네소타 의대가 한국의 생체 간이식 기술을 배우겠다며 지난해 10월 아산병원에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 미네소타 의대는 세계 최초 췌장이식과 조혈모세포 이식에 성공하는 등 미국에서 장기이식 분야를 이끌고 있는 의료기관이다. 하지만 뇌사자 장기이식에 의존해 온 미국의 특성상 생체 장기이식에 대한 이해도는 낮다.

반면 아산병원은 올해 10월 말까지 생체 간이식 4030례를 성공하는 등 생체장기이식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이승규 아산의료원장은 “우리에게 의료기술을 가르쳤던 미국이 우리한테 배우러 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의료기술이 선진국과 견줄 정도로 발전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1955년 9월부터 4년여 동안 미네소타 의대에서 공부했던 이호왕(88) 고려대 명예교수는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 우리나라 의료는 형편없었다. 의사들이 미국에서 배우고 와서 우리나라 의료가 서양식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면서 “이번에 신세 진 걸 갚는다는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국내 대형 의료기관들은 오래전 미국으로부터 받았던 것을 다른 나라에 돌려주는 ‘제2의 미네소타 프로젝트’ 추진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산병원은 1996년부터 몽골 베트남 네팔 등 14개국 의료인을 초청해 교육 등을 지원하는 ‘아산 인 아시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와 간호대, 보건대학원 등은 조만간 베트남에 우리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전수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